“‘제 별명이 ’10년 녹음’입니다. 만날 녹음만 하고 음반은 못 내니 주위에서 그렇게 부르더군요. 이번 음반도 10년간 준비했어요. 그간 고생도 많이 했으니 이제 정말 가수답게 무대에서 노래 불러야죠.”
6일 오후 서울 목동의 한 카페. 구릿빛의 한 사내가 들어와 “안녕하세요”라며 거침없이 인사했다. 1985년 ‘스잔’을 부른 가수 김승진(37·사진)이란다. 하얀 피부의 미소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대신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은…” 등의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김승진은 1997년 6집을 낸 이래 8년 만에 7집 ‘무사지심’을 6일 발표했다.
“1995년 단돈 5000원을 들고 집을 나왔습니다. 김완선 씨의 녹음실 꼭대기 옥탑방에서 지냈는데 살도 찌고 술도 많이 마시고…. 비참했죠. 어쩌다 편의점에 들러 삶은 달걀로 배를 채울 때면 사람들 볼까봐 구석에서 눈물 흘리며 먹곤 했어요. 그 와중에도 자존심 때문에 밤무대는 죽어도 서기 싫었답니다.”
김승진은 고교생이던 1984년 서울 종로와 수유리 부근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년 후 발표한 데뷔 앨범 ‘스잔’은 그를 일약 아이돌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음악적으로 슬럼프를 겪고 1997년 외환위기 때 발표한 6집은 돈이 없어 홍보도 못한 채 사장됐다. 2003년 록 그룹 ‘미카엘 밴드’를 결성해 재기를 시도했지만 홍보를 맡았던 후배가 돈을 빼돌려 달아났다. 그러나 그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노숙자 출신으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된 강신기 형님이 이번 음반 발표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사기 당하고 음반도 못 내는 제게 뮤직비디오 찍으라고 3000만 원을 주시더군요. 제게는 실낱같은 빛이었습니다.”
이번 7집의 타이틀 곡 ‘무사지심’은 무사(武士)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클래시컬한 록 발라드다. 또 슬픈 바이올린 연주를 담은 ‘회상’, 1980년대 팬들을 위해 다시 부른 ‘스잔 2005’도 담겨있다. 그는 “이전에는 ‘스잔’의 제목이나 가사에 나오는 ‘땅거미’ 같은 것들이 촌스러워 챙피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부르고나니 애착이 생겼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이어 자신과 라이벌로 알려진 가수 박혜성 얘기를 꺼냈다.
“데뷔 초 KBS의 한 프로듀서가 저희를 부르더니 ‘너네는 남진-나훈아’라고 하면서 대결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근데 저랑은 스타일이 완전 반대였어요. 걔는 ‘여우’고 나는 ‘늑대’라고 할까요. 이번에 내가 컴백한다니까 자기가 곡 준다고 연락 왔더군요. 근데 제목이 ‘일어나’였어요. 내가 혜성이 노래 ‘일어나’를 부르면 가수 김승진 체면 다 구겨지잖아요. 하하.”
그는 앞으로 공연 위주로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내년에는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도 갖는다. 그는 “아무리 스케줄이 없어도 오락 프로그램은 사절”이라며 다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