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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우리말의 탄생’…1957년 한글은 다시 태어났다

입력 | 2005-10-08 03:01:00


◇ 우리말의 탄생/최경봉 지음/392쪽·1만4900원·책과함께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구내 조선통운 창고. 화물을 둘러보던 역장이 커다란 상자 앞에서 멈칫했다. 그리곤 짤막하게 탄성을 토해냈다.

“앗, 바로 이거야.”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와 국어사전 원고를 찾던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애타는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역장은 서둘러 조선어학회로 연락을 취했다.

원고지 2만6500여 장. 1929년부터 편찬 작업이 진행되어 온 ‘조선말 큰사전’의 원고였다. 조판작업에 들어갔던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증거물이라는 명목으로 일제 경찰에 압수당했던 원고, 광복을 거치면서 행방불명됐던 원고였다. 행방을 찾지 못해 조선어학회 사람들을 애태웠던 그 원고가 드디어 조선어학회의 품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2년 뒤인 1947년 10월 9일, ‘조선말 큰사전’ 1권이 출간됐다. 다시 10년 뒤인 1957년 ‘큰사전’(‘조선말 큰사전’에서 ‘큰사전’으로 개칭) 전 6권이 완간되었다. 제대로 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 태어난 것이다.

1907년 최초의 국문연구소를 설립하고 우리말 사전 편찬의 필요성을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1957년 ‘큰사전’이 완간되기까지 꼭 50년. 만일 서울역에서 원고를 찾지 못했다면, 우리말 사전을 갖기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을까.

이 책엔 우리말 사전 편찬의 50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원광대 국문과 교수.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사전 편찬의 지난했던 과정, 우리말을 지키고 연구하고 사전을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들, 사전 편찬에 있어서의 다양한 논쟁 등 사전 편찬에 얽힌 모든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써내려갔다. 국내 최초로 쓰인 국어사전 편찬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제대로 된 우리말 사전이 나옴으로써 한글이 비로소 온전하게 다시 태어났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우리말의 탄생’으로 정했다.

사실 1957년 이전에도 우리말 사전은 있었다. 그러나 모두 작은 책자였고, 우리말을 제대로 집대성한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1957년 완간된 ‘큰사전’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집대성됐고, 민족적 권위를 인정받는 단체(조선어학회, 한글학회)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출간 이후 다른 사전의 전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국어사전”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사전 편찬의 50년 역사는 우리말과 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민족 독립, 민족자존의 역사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사전 편찬에 혼신을 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일제강점기 개성 송도고보의 조선어 교사였던 이상춘. 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그는 1919년부터 우리말 어휘를 수집 정리했다. 10년 동안 모은 어휘는 무려 9만여 개. 개인이 이렇게 많은 어휘를 사전용 원고로 만든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1929년 이 원고를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에 흔쾌히 기증했다. 그의 기증은 사전 편찬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한글 사전에 대초석’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사전 편찬이 중단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항했던 신명균의 삶은 읽는 사람을 숙연하게 한다.

우리말 연구의 방향을 잡았던 이봉운 지석영 이능화, 국어학의 대부 주시경 등 우리에게 익숙한 국어학자들의 이야기, 국문연구소 광문회 조선어학회 등 우리말 연구단체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사전 편찬 과정에서의 각종 일화도 흥미롭다. 1930년대 방언을 모으기 위해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는 학생 자원봉사자 등을 활용한 일, 표기법 철자법과 관련해 치열하게 펼쳐졌던 논쟁, 이 같은 논쟁으로 인해 사전 편찬이 지연된 일, 개인적으로 만든 사전 원고를 구하기 위해 사전편찬위원회 사람들이 중국 상하이(上海) 등지를 찾아다닌 일…. 이러한 일화는 흥미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일화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렸던 피와 땀이 함께 전해져 온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