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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우주]조류독감 해법 ‘스페인독감’서 찾길

입력 | 2005-10-08 03:02:00


1918∼19년 전 세계를 휩쓸며 5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미국 질병통제센터와 육군병리연구소의 연구자들은 그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의 전체 유전자를 해독해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독감 바이러스를 재생시켜 동물실험을 했다. 그 결과 스페인독감의 유래와 동남아시아 조류독감의 연관성 등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리게 됐다.

5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발표된 이 연구는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는 사람이 아닌 조류에서 유래됐으며,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치사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구나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에서 발견되는 유전자변이가 현재 동남아에서 급속히 유행하고 있고, 다음의 대유행병(Pandemic)이 될 가능성이 있는 유력 후보인 ‘조류독감 H5N1’ 바이러스에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조류독감의 인체 감염에 따른 높은 사망률도 설명이 된다. 며칠 전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들이 조류독감이 대유행하게 되면 500만 명 내지 1억50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우 놀랄 만한 사실들이 새로 밝혀진 것이다.

아시아에서 조류독감 H5N1의 유행은 2003년 말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13개국에서 1억 마리 이상의 가금류 집단 폐사로 이어졌다. 또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확인된 것만 해도 116명이 감염되고 감염자의 52%인 60명이 사망하는 등 확산일로에 있다. 최근 분리된 조류독감 바이러스들이 점차 다양한 유전자변이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되고 있다. 연구를 더 진행해 사람 사이의 바이러스 전파를 쉽게 일으키는 유전자변이의 원리만 알아내면 대유행병이 일어나는 마지막 빗장도 풀 수 있게 된다.

치명적인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의 전체 유전자지도가 세상에 공개되고, 재생된 바이러스가 미국 질병통제센터 실험실에 보관됨으로써, 테러단체에서 바이러스를 만들거나 탈취해 퍼뜨리는 생물테러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가생물안전자문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이번 연구결과의 공개를 결정했다. 그 이유는 과학자들이 앞으로 이 연구를 바탕으로 독감 대유행 대비에 필요한 진단법과 치료제, 백신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재구성된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의 어떤 부분이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인가를 규명할 수 있게 돼 이를 바탕으로 항바이러스제와 백신 개발에 큰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세계 각국은 독감 대유행에 대비한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을 비롯해 많은 선진국이 조류독감의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대량 비축을 서두르고 있다. 또 아직까지 임상연구 단계에 있는 조류독감 백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국내 유입과 양계농장에서의 조류독감 유행을 효과적으로 차단한 경험이 있지만, 조류독감 유행에 대비한 타미플루의 비축은 70만 명분에 그치고 있다. 또 조류독감 백신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매년 사용하는 일반 독감백신도 1600만 명분이 시판되고 있지만, 원료는 전량 선진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WHO는 독감 대유행에 대비해 각국이 독감백신 생산 능력을 조속히 확보하도록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독감 대유행 대비책이 충분한지 다시 한번 철저히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 교수·감염내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