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중지에 보호대를 한 박세리가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최악의 슬럼프 끝에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한 그이지만 예상과는 달리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제공 한국경제신문
“좀 더 성숙해지는 과정입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정말 소중했던 시간으로 남을 겁니다.”
혹독한 시련은 오히려 쓴 약이 된 듯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다 부상으로 시즌을 중도 포기한 박세리(28·CJ).
7일 휴식을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일시 귀국한 그는 평소 당당하던 모습과 달리 조심스럽게 입국장에 들어섰다. ‘금의환향’에 익숙하던 그가 최악의 슬럼프 끝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국길에 올랐기 때문. 그래서인지 옷도 수수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마중 나온 부모님과 잇달아 포옹하며 눈시울을 붉힌 박세리는 “고향에 오면 마음이 편하지만 이번엔 어깨에 무거운 짐을 들고 온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다쳐서 시즌을 그만둔 건 처음이라 정말 답답했다. 골프 말고는 다른 걸 생각해 본 일이 없어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쉬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고 털어놓았다.
왼손 중지에 보호대를 한 박세리는 “인대가 늘어나 차도가 더디다”며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다시 하고 침도 맞아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밝힌 부진의 원인은 끝없는 욕심. 명예의 전당 입회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다른 목표를 향해 집착하다보니 슬럼프에 허덕였다는 것.
최근 프로 전향을 선언한 미셸 위(위성미·16)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훌륭한 선수지만 아마추어 아이 때와 프로는 다르다. 부모님이 잘 관리해야 한다.”
이번 귀국길에 박세리는 1998년 LPGA 데뷔 이후 처음으로 캐디 백을 미국 집에 두고 퍼터 하나만 달랑 들고 왔다.
“이렇게 오래 골프채와 떨어 있기는 처음입니다. 절에도 가고 바다 구경도 하면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어야죠.”
인터뷰를 마친 뒤 대전 유성 집으로 떠난 박세리는 이달 말 출국한다.
인천=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