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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六.동트기 전

입력 | 2005-10-10 03:00:00

그림 박순철


하남(河南)이라고는 하지만 동짓달로 접어들자 외황(外黃)의 추위도 만만치 않았다. 성고를 떠날 때 나름대로 채비를 한다고 해왔지만 성을 에워싸고 있는 초나라 장졸들은 벌써부터 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포에 갑주를 걸치고 오추마(烏추馬)에 올라 외황성 성벽을 노려보고 있는 패왕 항우도 마찬가지였다. 말과 사람이 아울러 허연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 성밖 멀리 농가들이 모여 있는 마을 쪽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대여섯 기(騎)의 기마가 달려왔다. 패왕의 명을 받고 정탐을 나갔던 군사들이었다.

“그래, 알아보았느냐?”

패왕이 다가오는 그들을 알아보고 손짓해 불러 바로 물었다. 그중의 하나가 시퍼렇게 언 얼굴로 대답했다.

“팽월은 성안에 없습니다.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팽월은 벌써 엿새 전에 이곳을 지나갔다고 합니다.”

“여우같은 놈. 어디로 갔다고 하더냐?”

“그게 좀 이상합니다. 어떤 이는 하수(河水)를 건너 제나라로 갔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수양(휴陽)으로 달아났다고도 합니다. 다시 진류(陳留) 쪽으로 가는 걸 보았다고 우기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본시 간사한 여우는 굴을 팔 때 달아날 길을 아홉 갈래로 내는 법이다.”

패왕은 그렇게 대답하며 양(梁) 땅으로 달려와 맨 처음 떨어뜨린 진류성을 떠올렸다. ‘항왕이 왔다’는 외침 한마디로 성문을 열고 무릎을 꿇던 진류성의 군민들이었다. 옹구(雍丘)와 고양(高陽)도 비슷했다. 고양에 팽월의 군사가 있어 겨우 하루 낮 하룻밤을 버티었으나, 그것도 다음 날은 성안 백성들만 남겨 놓고 모두 달아나고 없었다.

그 바람에 패왕의 대군이 성고에서 외황까지 오는 데는 닷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대로 간다면 수양까지 되찾고도 대사마 조구(曺咎)와 약속한 보름 안에 성고로 돌아갈 수 있을 듯싶었다. 그런데 외황에서 그만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군민이 합심해 얼마나 굳게 버티는지 초나라 군사들이 사흘이나 힘을 다해 들이쳤지만 누구 한 사람 성벽 위에 한번 제대로 올라가 보지 못했다.

그러자 패왕은 다급해졌다. 양 땅에서 오래 붙들려 있다가 성고에서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몰라 더욱 급하게 군사들을 몰아댔다. 그러나 다시 이틀이 더 지나도 외황성은 여전히 끄떡 않았다. 거기다가 묘한 일은 상하(上下)와 군민(軍民)이 한 덩어리가 되어 지킨다는 것뿐, 누가 우두머리 되는 장수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패왕은 그날 다시 외황성을 들이치기 전에 정탐하는 군사를 풀어 성을 지키는 적장부터 알아보게 했는데 방금 돌아온 기마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럼 성을 지키는 장수는 누군지 알아냈는가?”

패왕이 마침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정탐을 나갔던 군사가 갑자기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몇 사람의 젊은 장수들이란 말은 들었으나 그 이름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름이 없다면 하찮은 졸개일 터, 많지도 않은 군사를 이끌고 과인에 맞서 닷새나 버틸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 농투성이들이 너희들을 속였을 것이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