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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코드…2000년의 비밀]고려-조선시대 사찰 건축

입력 | 2005-10-10 03:00:00

충남 부여군 무량사 극락전의 안쪽 살미(왼쪽)와 바깥 살미. 안쪽 살미는 덩굴무늬가 연꽃, 용, 봉황으로 화생하는 표현을 담고 있고 바깥 살미는 덩굴무늬의 뻗침을 길게 빼 역동적으로 표현하면서 연꽃과 봉황을 곁들이고 있다. 안쪽 살미와 바깥 살미는 하나로 연결된 구조물이다. 사진 제공 강우방 교수



《2002년 초겨울 전남 영광군 불갑사(佛甲寺)의 대웅전 안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기(靈氣)무늬가 불상 광배의 무늬와 직결됨을 논문으로 쓴 지 얼마 안 되는 즈음이었는데 고개를 드는 순간, 그때 처음으로 불교건축의 천장이 눈에 잡혔다. 그것은 바로 영기로 가득 찬 세계였다. 역동적인 영기가 소우주인 대웅전 안에 가시적(可視的)으로 충만하고 있었다. 건물의 안뿐만 아니라 밖에도! 그 환희의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덩굴모양의 영기에서 연꽃, 용, 봉황 등이 화생(化生)하는 도상이 건물 밖과 안을 눈부시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때 한국미술사를 새로이 연구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 고려와 조선시대 사찰 건축의 숨겨진 비밀-살미

고려와 조선시대 사찰의 대웅전이나 조선 궁궐 정전(正殿)의 건축양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지붕과 기둥 사이에 있는 공포부(공包部)이다. 무거운 지붕의 무게를 기둥을 통하여 골고루 퍼지게 하는 동시에 그 공포 양식으로 건축의 편년(編年)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교하고 현란하고 역동적인 공포의 구조, 형태, 단청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데 분명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다.


충남 부여군 무량사 극락전의 안쪽 살미 개념도. 덩굴무늬가 뻗쳐나가다가 연꽃과 용, 봉황으로 변화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공포는 건물의 벽과 평행하여 가는 첨차와 건물 안팎으로 돌출된 살미가 십자로 교차하여 한 단위를 이룬다. 우리나라는 특히 살미 부분을 다채롭게 조형화해 건축을 장엄하게 만들며 높은 차원의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즉, 건축적 기능에 제약을 그다지 받지 않으므로 마음껏 형태의 변화를 꾀할 수 있어서 동양의 우주론을 함축한 아름다운 형태로 만들되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리고 절에 따라 자유롭고 다양하게 표현되어 왔다. 가히 한국 건축의 꽃이라 할 만하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공포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많은 경비를 들여서 세계 건축사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공포의 형태를 현란하게 발전시켜 왔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 호류지(法隆寺) 5중(重) 석탑의 공포가 구름 모양을 띤 것이라는 일본 건축학자 세키구치 씨의 학설에 따라 공포가 구름을 상징하여 사원 건축이 천상의 건물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었다고 믿어 왔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건축이 우주에 충만한 영기를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였음을 밝혀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건축 가운데 하나인 수덕사(修德寺) 대웅전은 1308년에 건립되었다. 고려시대의 건물로 그 간결한 구성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려 건축은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어서 주심포(柱心包) 건축이라 하는데 그 외부 살미는 덩굴무늬를 간략하게 추상화한 것이다. 그것을 ‘소의 혀’를 닮았다 해서 쇠서(우설·牛舌)라고 한 것은 후대에 그 원래 의미를 모르고 지은 것인데 학계에서도 이를 의심 없이 써 왔다. 그것은 소의 혀가 아니라 길게 위로 길게 뻗친 덩굴을 조형화한 것이다. 덩굴 갈래마다에서 연봉(연꽃 봉오리)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연봉이라는 것은 남아 있는 단청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고구려 고분벽화의 덩굴무늬처럼 그 부분은 반드시 붉게 채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붉은 색, 푸른색 등으로 엇갈려 칠하는 경우에는 연봉의 형태를 확실히 표현한다.

○ 단청으로 그린 연꽃과 용, 봉황의 의미

고려를 거쳐 공포가 마음껏 현란하게 꽃피운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충남 부여군 무량사(無量寺)는 고려 초에 건립됐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623년에 재건됐다. 그 중심 건물이 극락전인데 밖에서 보면 중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1, 2층이 통해 있어서 드높고 넓은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 극락전의 바깥 살미는 사진에서처럼 1층 기둥 위로 덩굴무늬의 뻗침이 길게 뻗쳐 올라가는 영기무늬로 인해 역동성을 띠고 있다. 제1, 2, 3의 덩굴 싹의 뻗침 위 4번째는 활짝 핀 연꽃이 돌출되어 있고 살미 가장 위는 연꽃을 입에 물고 있는 봉황이 몸을 내밀고 있다. 즉, 영기무늬가 세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덩굴모양의 영기무늬에서 연꽃과 봉황이 화생하는 형국이다.

안쪽 살미를 살펴보면 기둥 바로 위의 살미는 덩굴무늬 사이사이에서 붉고 푸르고 노란 연봉만이 화생하고 있는데 반해, 기둥 사이의 살미에서는 덩굴무늬 영기무늬에서 용과 봉황이 화생하고 있다. 무량사를 비롯한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불교건축에서 이처럼 폭발적이면서 현란한 공포를 건물 안팎에 배치함으로써 우주를 축약한 건축에 충만한 신령스러운 영기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동시에 위대한 부처의 정신과 몸에서 발산하는 영기무늬이기도 하다.

단청으로 그린 덩굴무늬를 3차원적 조형으로 번안한 것이 한국의 공포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로 장식적인 공포 형태의 공간에 단청으로 덩굴무늬를 그려 넣은 것으로 막연히 생각해 왔던 것이다. 시각적 사고의 전환 없이는 옛 예술품의 상징을 읽어 낼 수 없다. 극락전 벽에 기대어 이 소우주 공간에 가득 찬 현란한 무늬의 전개와 채색을 보면 황홀경에 빠지는 듯하다. 만약 고구려 고분벽화를 오랫동안 살펴보며 익숙해 있지 않았다면 1400여 년 후의 조선 건축에서 그 불가사의한 동질성을 확인할 수 없었으리라.

강우방 이화여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