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자녀를 키우는 ‘싱글 맘’, ‘싱글 대디’들이 이 세상을 헤쳐 나가기엔 너무도 벅차다. 아이가 아파도 집에 혼자 남겨 두기 일쑤고 폭력배 아이들과 어울려도 속수무책이다. 전세를 얻기도 힘들고 심지어 은행 대출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보다 이들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사회적인 고립감이다. 가족도 친구도 남남이 돼 간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 움츠러든다. 자살도 잇따른다. 이에 본보는 이혼 증가로 부쩍 늘고 있는 싱글 맘, 싱글 대디의 가정 문제를 설문과 현장 취재 등을 통해 시리즈로 심층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 본다. 》
이혼 8년째인 김경숙(가명·50·여·서울 종로구) 씨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명절이다. 이혼 후 몇 번 명절 때마다 친정을 찾았지만 형제자매 모두 부부 동반이라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
김 씨는 “가족 모임에서도 여자들끼리의 대화 주제는 ‘남편’과 ‘시댁’인데 내 눈치를 보느라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 그들이 너무 불편해 보였다”고 말했다.
김 씨는 3년 전부터는 아예 친정에도 발길을 끊었다. 명절에 집에서 인터넷이나 TV를 보며 쓸쓸해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온다.
▽‘그들’이 돼 가는 가족과 친구들=2년 전 이혼한 문지영(35·여) 씨는 당시 부모님이 자신에게 “네가 수치스럽다”고 한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후 문 씨는 1년에 한두 번, 그것도 마지못해 친정을 찾는다.
문 씨 집과 친정은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 그녀의 부모님은 아직도 딸이 이혼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문 씨는 “낮에 일하느라 아이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친정에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아이 보고 밥 먹으러 오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이제는 가족이나 친척들에게서 위로나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싱글 맘들은 친구들과도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남편이라는 공통된 화제에 낄 수 없는 싱글 맘들에게 친구들과의 만남은 불편 그 자체다.
대신 같은 처지의 싱글 맘 모임이나 종교 모임에 참가하는 경우가 대부분.
본보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싱글 맘이 된 후 집안 경조사에 참석하는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6.7%로 절반에 가까웠고 1년에 한두 번이 41.3%로 뒤를 이었다.
▽나는 동네의 ‘주홍글씨’=싱글 맘들은 집을 얻을 때 혼자 산다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괜히 동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도 않고,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다.
이서경(가명·43·여·서울 중랑구) 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친정 오빠가 밤늦게 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왔는데 다음 날 곧바로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웬 남자가 드나든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던 것.
이 씨는 “내가 없는 동안 집주인이 아이에게 ‘왜 아버지가 없느냐’ ‘언제부터 혼자 됐느냐’는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며 “나에 대한 편견은 견딜 수 있지만 아이에게까지 그러는 것은 도저히 참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싱글 맘의 자녀들을 기피하고 있다.
조사 결과 싱글 맘 자녀가 학교에서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놀림이나 따돌림을 경험한 비율은 10명 중 3명꼴인 31.9%에 달했다.
▽어렵기만 한 내 아이와의 관계=이혼 3년째인 김명희(가명·38·여·서울 노원구)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혼자 풀이 죽어 대중목욕탕을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
지하 단칸방의 좁은 욕실에서는 샤워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대중목욕탕에 가야 하지만 아들이 고학년이 된 이후 목욕을 함께 못 가고 있다.
한 번은 결혼한 남동생이 자기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갈 때 끼워 보냈지만 처음에 신나하던 아들은 딱 한번 같이 간 이후로 혼자 목욕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김 씨는 “외삼촌과 사촌이 정답게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 녀석이 아빠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한동안 시무룩했던 아들을 보고 자식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싱글 맘인 내 자신의 처지가 미워졌다”고 말했다.
싱글 맘들이 겪고 있는 고통 중 하나가 바로 자녀 문제.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자칫하면 아이에게 풀 수 있어 아이의 정서와 인성 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라 아이가 엄마에게 심적 부담을 느끼게 될 가능성도 높다.
서유숙(가명·37·여·서울 마포구) 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자신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분리장애’를 보여 한동안 고생했다. 서 씨의 아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서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조사 결과 자녀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비율이 48.1%로 절반에 육박했으며 자녀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친지를 초대하지 않는 가정도 61.3%에 달했다.
또 6세 미만 자녀가 있는 싱글 맘 중 절반이 넘는 52.5%가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놀이방에 맡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서울거주 200가구 두달간 설문-면담 조사
모자가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 조사는 현재까지 전무한 실정.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호수급자와 모·부자복지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모자가정 정도만 파악할 뿐 모자가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차상위 계층’을 아우르는 조사는 거의 없었다.
본보 취재팀은 8월 초부터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소장 황은숙)와 공동으로 모두 100여 개의 설문문항을 작성했으며 서울시내 각 구청의 도움을 받아 두 달에 걸쳐 200가구의 싱글 맘 가정에 대해 면담을 병행한 심층조사를 벌였다.
조사 문항은 크게 건강 및 질병, 사회적 인식, 자녀양육 및 교육, 정부 지원, 수입, 미래에 대한 계획, 직업, 성희롱 등 8가지 분야로 이뤄졌으며 설문지 분석은 숙명여대 통계학과의 도움을 받았다.
또 50명의 싱글 맘을 직접 면담해 이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싱글 맘들의 경우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는 까닭에 모든 취재는 주로 야간과 휴일에 진행됐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