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부터 운영한 새 여권 발급 시스템이 한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접수가 늦어지고 있다. 10일 서울 종로구청 여권과를 찾은 민원인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박영대 기자
새 여권 발급 시스템에 오류가 잦아 민원창구 업무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여권을 신청하려면 3, 4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발급 기간이 전보다 두 배 이상인 7∼15일이나 걸려 해외에 나가려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너무 힘든 여권 신청=다음 주에 미국에 출장을 가는 회사원 장석우(36) 씨는 여권을 갱신하려고 10일 오후 3시경 서울 종로구청 민원실을 방문했지만 창구에서 “더 이상 접수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담당 직원은 “원래 접수 마감은 오후 6시이지만 이미 대기자가 찼으니 내일 오라. 재발급에 14일가량 걸린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김인규(31) 씨도 일시 귀국해 고향에 들렀다가 여권을 잃어버린 뒤 애를 태우고 있다. 시험을 치르려면 늦어도 11일 출국해야 하는데 여권 발급이 늦어지기 때문.
주부 박정순(43·대구 수성구) 씨는 “대구시청 민원실에서 오전 11시부터 2시간 이상 기다렸지만 대기자가 많아 신청하지 못했다”며 자리를 떴다.
인천시는 민원인이 오후 8∼9시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자 오후 3시에 접수를 마감하고 있다.
▽새 시스템이 문제=외교통상부는 여권 위조 및 변조를 막기 위해 신청서를 스캔하는 방식으로 민원인의 이름과 주소를 입력하는 시스템을 9월 30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글씨를 또박또박 쓰지 않으면 스캔이 되지 않아 창구 직원들이 다시 내용을 쳐 넣어야 한다.
신청서를 스캐닝하고 통합전산망으로 신원을 조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10∼20분. 전에는 2, 3분이면 충분했다.
대구시 민원실 여권 담당 직원인 강옥자(姜玉子·6급) 씨는 “신청서를 스캔하면서 한번에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자 대구의 경우 전에는 하루에 660여 건의 신청을 받았지만 요즘은 490여 건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다음 날로 미룬다.
서울 종로구청 역시 하루 평균 1100명 정도를 접수했으나 이달 들어서는 하루 800명 정도만 처리한다.
오래 기다렸지만 사진 때문에 돌아가는 시민도 많다. 인물사진의 배경이 △흰색 △옅은 하늘색 △옅은 베이지색이 아니면 규정에 어긋난다며 받아주지 않는다.
사진 때문에 반려되는 신청서는 민원 창구마다 하루 평균 50∼100건에 이른다.
▽대책은 없나=행정자치부는 6일 전국 시도에 공문을 보내 여권 담당 직원을 증원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인원 증원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조례를 개정해야 하므로 실제 배치는 내년에나 가능하다.
외교통상부 원종온(元鍾溫) 여권과장은 “시도의 여권 발급 실태와 민원인의 불편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