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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六.동트기 전

입력 | 2005-10-11 03:09:00

그림 박순철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들은 ‘거야택(巨野澤)의 100 소년’ 가운데 몇이라 했습니다.”

“거야택의 100 소년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패왕 항우가 알 수 없다는 듯 탐마를 나갔다 온 군사에게 물었다. 그때 곁에 있던 계포가 그 군사를 대신해 패왕의 물음을 받았다.

“팽월이 거야택에서 도둑질하며 살다가 처음 몸을 일으킬 때 따라나선 인근 마을 소년들로, 저희들이 먼저 팽월을 부추겨 기의(起義)에 나서게 했을 만큼 기백 있는 젊은이들입니다. ‘팽월의 일참(一斬)’으로 단련된 그들이 장수가 되어 이 성을 지키고 있다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얕보아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팽월의 일참이란 또 무슨 소리요?”

“모질기로 이름난 팽월의 군율입니다. 처음 그들 소년 100여 명이 팽월을 찾아가 우두머리가 되어 주기를 청했을 때, 팽월은 몇 번이나 사양하다가 겨우 허락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해가 돋을 때 모여 거병(擧兵)하기로 하였는데, 그때 팽월은 시각을 어기면 참수(斬首)해도 좋다는 약조를 받아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이웃 마을 어른으로만 여겨 온 팽월이라 소년들은 그 약조를 무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여남은 명이나 늦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늦은 소년은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에야 정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팽월은, ‘내가 나이 들어 사양했는데도 그대들이 나를 억지로 졸라 우두머리로 세웠다. 그리고 오늘 해가 돋을 때 모이기로 약조를 했는데, 이렇게 지키지 않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늦게 온 사람이 많아 다 죽일 수는 없되, 가장 늦게 온 사람은 죽여 군율을 세워야겠다’라고 말하고는 소년들 중에 대장을 뽑은 뒤 가장 늦게 온 소년의 목을 베 죽이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년들이 모두 웃으면서 ‘차마 그럴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다음부터는 감히 군율을 어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팽월은 기어이 그 소년을 끌어내 목을 베고, 제단을 차려 제사를 올리면서 군율의 엄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명을 내리니, 모두 놀라고 두려워 감히 얼굴을 들고 팽월을 바라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팽월의 무리가 나아감과 물러남에 저토록 재빠르면서도 빈틈이 없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이 모진 군율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팽월의 사람 부리는 재주에 은근히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슬며시 호승심이 일었다.

“그 늙은 도적놈에게 제 졸개를 다루는 못된 꾀가 있다면, 과인에게는 겁 없이 맞서는 적을 다스리는 엄한 법이 있다. 저놈들에게 어느 것이 더 무서운지를 보여 주어야겠다.”

그러고는 먼저 외황성을 지키는 팽월의 장수들을 불러내 항복하기를 권해 보았다.

“끝까지 과인에게 맞서다가 성이 떨어지면 너희들은 모두 산 채로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다시 죽을 목숨이 남아 있지 않는데 팽월을 두려워할 게 무엇이냐? 어서 항복하라.”

그러나 대답 대신 날아온 것은 화살과 쇠뇌의 살이었다. 이에 성난 패왕은 그날로 다시 전군을 들어 무섭게 외황성을 들이쳤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