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국회의원 재선거 부재자 신고 마감을 하루 앞둔 10일 한 유권자 집의 전화벨이 울렸다. 모 후보 측을 지지하는 지인이 “투표를 할 것이냐”고 물었고 이 유권자는 “투표일에 다른 일이 있다”고 응답했다.
얼마 뒤 이 지인이 찾아와 부재자신고서를 보여 주며 부재자 투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소(주민등록지), 거소(居所·우편물을 받아 볼 수 있는 장소), 전화번호, 성명을 쓰고 날인해서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투표용지가 배달돼 오면 투표용지에 기표해 우체통에 넣으면 다 끝난다.”
경기 광주, 부천 원미갑, 대구 동을, 울산 북 등 4개 재선거 지역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8월 4일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군인 경찰공무원 등이 아닌 일반인도 신고만 하면 부재자투표를 할 수 있다. 특히 재·보선의 경우에는 총선 때와 달리 부재자투표소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집이나 직장 등에서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받아 ‘거소투표’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부재자 신고에서부터 투표에 이르기까지 본인 신원확인 절차가 생략돼 ‘대리 행위’가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될 개연성이 작지 않다는 점이다.
부재자신고서 양식은 누구든지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도 있고 시구청과 읍면사무소에서도 본인 확인 등의 까다로운 절차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매표’와 ‘대리투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이 10일 “일부 지역에선 부재자 신고할 때 5만 원, 투표용지를 가져오면 5만 원을 추가 지급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해 논란의 방아쇠를 당겼다.
여야를 불문하고 각 후보 진영에서는 갖가지 부정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경기 부천 원미갑의 한 후보 측은 “유권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투표를 한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투표 불참 의사가 확실한 유권자의 부재자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해 ‘원하는 장소’로 투표용지를 보내게 한 뒤 대리 투표를 해도 선관위가 이를 적발하기 쉽지 않다는 것.
중앙선관위 측은 “걸리면 후보자는 당선무효다. 또 매표는 구속 사안이기 때문에 부정행위는 어렵다”면서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중앙선관위가 11일 4개 지역 선관위에 “유권자가 자기 의사에 따라 부재자 신고를 했는지 확인 조사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린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거소투표란?:
노약자와 장애인 등이 투표소에 가지 않고 거주지에서 투표하는 제도. 개정 공직선거법 특례조항에 따르면 재·보선에 한해 부재자도 부재자 투표소가 아닌 거주지에서 투표할 수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