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기자
“방이 좀 갑갑한데… 괜찮죠?”
문을 열자 담배 냄새가 밀려왔다. 7일 서울 신촌의 7평 남짓한 오피스텔. 비좁은 공간을 차지한 다섯 대의 기타, 깜빡거리는 형광등, 여기저기 널린 청바지…. 가수 한대수(57)의 방은 건조했다. 목이 칼칼했다. 기침을 하자 그가 말했다.
“오, 저런. 내가 ‘고독한 커피’를 끓여줄게요.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아침은 내 인생의 고독으로 만든 이 커피가 제격이랍니다.”
커피 잔을 내민 그는 탁자에 놓인 둔탁한 상자를 높이 들었다. 3년 후 환갑이라는 이 중년, 갑자기 아이처럼 웃는다.
“이게 내 음악생활의 전부라네요. 완제품을 받고 뿌듯해서 밤새 만지작거렸죠. 묵직한 게 얼마나 좋은지….”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 그가 37년 음악 인생을 14장의 CD 세트에 응축한 ‘더 박스’를 6일 내놓았다. 그가 상자를 열었다. 닫혀 있던 그의 입도 함께 열렸다.
○ #장면 1… 박스를 만지작거리다
“내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생각해요.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으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음악만큼은 꾸준히 해온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압축파일처럼 내 음악 모든 것을 이 상자에 눌러 담은 겁니다.”
―‘더 박스’. 뭔가 의미가 있는 제목 같네요.
“내 음악을 담은 상자란 1차적인 뜻이 있지만 속어로 여성의 성기, 그리고 죽음을 뜻하는 ‘관’이라는 뜻도 됩니다. 여성의 몸에서 탄생해 음악을 창작하고 훗날 죽음을 맞이하는 내 인생을 뜻한답니다. 결국 남는 것은 음악뿐이죠.”
14장의 CD는 한대수가 가수로 산 37년 세월의 역사교과서다.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가 담긴 1974년 데뷔 앨범 ‘멀고 먼 길’부터 지난해 발표한 10집 ‘상처’, 그리고 1970년대 뉴욕에서 결성한 록 밴드 ‘징기스칸’ 시절 발표한 곡들과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4년 동안 찍은 뮤직비디오까지….
○ #장면 2… 네 음악 자신 있냐?
“1960년대 말 사람들은 나를 ‘외계인’ 취급했답니다. 이미자, 나훈아의 음악만 듣던 사람들이 청바지 차림에 긴 생머리 가수를 이해할 리 없었죠. ‘히피 문화’, ‘반체제 가수’ 등으로 나를 설명하려 들었죠.”
―군사정권 시절에 저항 음악… 어찌 보면 당신의 음악은 시대를 잘 타고 난 듯해요.
“그렇지도 않아요. 금지곡이 많아 활동을 못 했으니…. 오히려 요즘이라면 서태지만큼 세상을 바꿔놨을지도 모르죠. 한 음악이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30년 후 두고 봅시다. 내 음악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 #장면 3… 흰머리, 청바지, 검은색 롱부츠
그는 최근 경기 광명시에서 열린 ‘광명음악밸리축제’의 홍보대사를 맡았다. 또 10일부터 12일까지 EBS ‘스페이스 공감’이 마련한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고 부르는 이유’ 편에 첫 번째로 초청돼 공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년 초 개봉 예정인 이항배 감독의 영화 ‘모노폴리’에 양동근과 함께 출연하고 이달 말에는 에세이집 ‘올드보이’가 출간된다. 나이를 잊은 것 같다는 말에 돌아오는 답에는 근심이 어렸다.
“요새 건강이 안 좋아요. 혈관에 이상이 생겼고 오른쪽 팔도 아파요. 인생은 부서지기 쉬운 겁니다. 하지만 죽음이 두렵지는 않아요. 끊임없이 창작하는 거죠. 환갑도 그렇게 음악 작업 하다가 맞을 것 같아요.”
―이제 당신에게서 ‘거장’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거장’, ‘히피’, ‘포크 가수’. 그것들은 너무나 단순한 수식어랍니다. 한대수는 그저 이 시대를 묘사하는 ‘창작인’입니다. 양호한 창작인요. 양호하다. 양호해….”
헝클어진 장발에 흰머리가 뭉텅이로 섞인 한대수는 여전히 검은색 롱부츠에 청바지 차림이다. 환갑이 지나도 그에게는 양복은 안 어울릴 듯하다
철들지 마라, 최후의 히피여.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