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여야 간에 벌어지고 있는 세금 논쟁은 해묵은 사상 시비가 아닌 선진국형 ‘정책 논쟁’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그것도 대통령 선거 초반에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 넣은 공약(空約)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 중반에 벌어지는 ‘논리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정치 발전에 대한 희망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기까지 하다.
미국에서도 세금정책은 전쟁, 낙태와 더불어 3대 주요 이슈로서 해마다 대통령의 실적을 평가하는 중요 잣대다. 자연히 공화당과 민주당 간 설전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한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레이거노믹스를 통한 본격적인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 야기된 감세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쟁은 집권 2기를 맞은 조지 W 부시 정부에 이르러서도 끝을 볼 수 없을 만큼 첨예한 정책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감세에 따른 소득 분배 이슈에 대해서만은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결론이 난 느낌이다. 즉 소득세나 법인세 인하와 같은 일률적인 감세정책은 상위 소득계층의 조세 부담을 하위 소득계층으로 전가하며, 이에 따라 소득계층의 다수를 이루는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에 발표된 미국 의회 예산처 보고서에 따르면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에 따라 소득계층 상위 20∼60%에 속하는 중산층의 상대적 조세 부담은 감세가 시작되기 전인 2001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위 20%에 속하는 계층의 상대적 조세 부담이 2001년에 비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이들 고소득층의 조세 부담이 중산층으로 전이되었음을 보여 준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은 “상위 1%에 속하는 소득계층의 평균 세금 절감액이 상위 20%에 속하는 계층의 세금 절감액에 비해 무려 70배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이 보고서를 상세히 보도했다.
공화당 등의 미국 보수층은 이러한 미국 의회 보고서가 민주당이 주도해 작성된 것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공화당 등의 주장은 좀 더 중립적인 연구단체 ‘예산과 정책 우선순위 센터’가 의회 보고서보다 몇 개월 앞서 발표한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한 종합 보고서’ 때문에 설득력을 잃고 만다. 의회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이 보고서 또한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에 따라 상위 1% 소득계층의 감세액이 상위 20% 계층의 감세액의 54배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 측은 이들 보고서가 감세정책의 중요한 측면인 경기 부양 효과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대통령 선거 대변인을 지낸 테리 홀트 씨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감세정책은 공공성의 측면에서 분석해야 하며 이는 감세정책이 이뤄 온 경기 부양 효과를 고려할 때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세정책의 경기 부양 효과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며, 미국의 대다수 국민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별다른 경기 부양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중산층이 다음 선거에서 세금정책과 관련해 다시 공화당의 손을 들어 줄지는 쉬 예측하기 힘들다.
한국의 감세 논쟁도 ‘깎자’ ‘말자’의 입씨름 수준이 아니라 소득 분배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경기 부양 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된다면 더욱 생산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김 환 미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