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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제완]30억년에 1초 틀리는 시계

입력 | 2005-10-14 03:00:00


우리들은 빛을 통해 사물을 보고 모양을 안다. 듣고, 냄새 맡고, 만져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눈으로 보고 얻는 정보가 절대적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도 이런 뜻일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빛의 과학적 이해는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영국인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에 의해 일단 완성된다. 그는 빛은 물결처럼 전기와 자기의 진동이 공중에 퍼져 나가는 파동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보통 듣는 라디오방송은 파장(파동의 산꼭지, 즉 가장 높은 점과 다음 파동의 높은 점 사이의 거리)이 10m 정도 되는 전파이고,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마이크로파는 그 파장이 몇 cm이며, 적외선은 그 파장이 몇 mm라면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은 그 파장이 10만분의 1cm 정도 되는 전파라는 설명이다.

맥스웰의 이론은 당시 이들 각종 전파의 모습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적어도 과학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전파, 즉 전기와 자기의 파동은 물결처럼 연속적 모습을 가진 ‘아날로그’형이 아니라 알갱이로 이뤄진 ‘디지털’형이라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이론으로 알려진 이런 주장은 곧 사실로 확인됐으며 이런 디지털형 과학을 양자론이라고 한다. 양자론은 전자산업의 탄생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빛의 경우 ‘아날로그’형의 파동으로서도 광학현상을 설명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으므로 ‘디지털’형인 양자광학은 물리학자들의 마음을 크게 끌지 못했다.

1963년이 돼서야 로이 글라우버 교수가 빛의 디지털 이론인 양자광학을 빛과 전자에 적용해 양자컴퓨터 및 암호이론의 기초를 개척했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글라우버 교수와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자인 존 홀 박사, 테오도어 헨슈 박사는 이러한 양자광학 이론과 레이저 기술을 이용해 파동형 빛을 짧은 다발인 펄스(pulse)로 만들었다. 이 펄스의 폭을 좁히려면 다른 많은 진동수의 파형을 조밀하게 합해야 한다. 이들 진동수 성분의 모습이 마치 머리를 빗는 빗처럼 조밀하게 모여 있어 이를 ‘진동수 빗 기술’이라고 한다. 홀 박사와 헨슈 박사는 빗의 톱니 간격이 말 그대로 찰나(刹那)인 1아토초(100만 조분의 1초)가 되도록 만들어 정확한 시간 측정이 가능케 했다.

이들의 업적은 미래 과학과 일상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디지털 통신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량할 것이다. 디지털 정보를 전달할 때 송신자와 수신자의 시계가 정확하게 맞춰지지 않으면(동기화) 수신된 정보 내용이 엉망이 된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은 30억 년에 1초가 틀리는 정확한 시계를 제공한 것이다. 인공위성자동위치측정시스템(GPS)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GPS의 정확도가 향상되면서 머리카락의 굵기까지 잴 수 있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정밀 과학기기는 원자핵 크기의 길이도 잴 수 있게 됐다.

순수 과학적으로는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1아토초는 빛이 원자를 가로지르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찰나에 해당한다. 수상자들의 업적을 이용하면 화학반응을 촬영하는 등 말 그대로 찰나에 일어나는 일을 포착할 수 있다. 이들의 업적 덕분에 아인슈타인 박사의 상대성이론이 예언한 중력파를 탐지할 수 있는 ‘라이고’라는 장치가 현재 미국에 설치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주가 탄생할 때 그 아기 우주의 울음소리를 들으려는 ‘차세대 중력파망원경(LISA)’이 우주공간에 설치될 예정이다. 어떤가. 과학의 힘은 편리하면서도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