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신 발레리나인 이상은 씨. 사진 제공 유니버설발레단
요즘 세계적으로 발레리나들의 키가 커지는 추세다.
다음 주 내한하는 몬테카를로발레단의 경우 발레리나들의 평균 키가 무려 180cm 안팎. 최근 내한했던 볼쇼이발레단의 주역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도 173cm로 큰 편이다. 일반적으로 발레리나의 키는 164∼168cm.
키 큰 발레리나들의 애로 사항은 자신의 키에 맞는 남성 파트너를 고르기가 힘들다는 것. 박인자 국립발레단장은 “남녀 무용수의 키 차이가 5∼10cm일 때 눈높이가 맞아 가장 이상적인 ‘키의 궁합’”이라고 말한다.
발레리나는 발끝으로 서기 때문에 15cm 정도 키가 더 커지므로 실제로는 남자 무용수가 여자보다 20∼25cm 커야 한다. 따라서 고전 발레의 경우 키 작은 남자 무용수는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주역을 맡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하로바의 상대역도 24cm가 더 큰 197cm.
국내 남자 주역들의 경우 국립발레단의 이원철이 176cm로 작은 편이고 대부분 183cm 안팎이다.
여자 무용수 중에는 유니버설발레단(UBC)에 올해 입단한 이상은이 181cm로 가장 크다.
“군무에서도 너무 키가 크면 혼자 튀기 때문에 캐스팅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지젤’에서는 남녀가 함께 군무를 추는 1막에서 제외됐다. 남자무용수보다 키가 큰 탓이었다.”
주역 발레리나 중에서는 UBC의 임혜경(174cm)이 가장 크다. 반면 국립발레단의 전효정과 UBC의 황혜민은 155cm를 조금 넘는 ‘아담 사이즈’.
임혜경은 “팔도 길다 보니 회전할 때 파트너를 치지 않도록 거리 조절을 해야 하고 서 있을 때도 가급적 작아 보이도록 자세나 각도를 수정한다”고 말한다.
또 아무리 말랐다고 해도 작은 발레리나보다 몸무게가 더 나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남성 무용수 중에는 키 큰 발레리나의 리프팅(들어올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많은 국내 발레리나가 꼽는 최고의 파트너는 서른여덟 살의 ‘노장 발레리노’ 이원국. 임혜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화려한 테크닉 외에 좋은 파트너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키가 크다 보니 남자 파트너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부터 갖게 된다. 그래서 공연 때마다 ‘저를 들 때 힘드시겠다’는 말을 꼭 건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원국 씨는 ‘아니다, 너는 완벽한 사이즈니까 걱정 말라’며 부담을 덜어 준다. 어쩌면 파트너를 위한 이런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 실제 무게감도 덜어주는지 모른다. 리프팅은 결국 두 사람 간의 ‘호흡’(타이밍)이기 때문에 몸무게나 키보다도 두 사람의 믿음과 파트너십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