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부터 과학영재학교 설립에 관심을 갖고 뛰어다녔던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 문정오 교장. 그는 “올바른 역사관, 예능, 세련된 매너를 동시에 갖춰야 국제 사회에서 대과학자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최재호 기자
《‘잘 키운 한 명의 과학영재는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국보급 재목이 될 수 있다.’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 문정오(文定五·61) 교장이 성경 구절처럼 믿는 문구다. 엘리트 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비전을 가진 그는 국내 처음으로 중등 영재교육 분야를 개척했고 이제 그 열매를 거두기 시작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올해 첫 도전에서 3학년 재학생 138명 전원이 유명 대학의 수시모집에 합격하거나 해외 명문대에 진학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를 두고 “첫 타석에 장외홈런을 날렸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문 교장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위한 영재교육원과 영재교실은 곳곳에 있지만 수능시험과 대학입시라는 한계 때문에 고교 과정의 영재교육은 현실적으로 모험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수능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창의력 개발과 연구과제 중심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의 미래는 우수한 과학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약소국이 살아남는 길은 과학기술밖에는 없거든요.”
그는 “평준화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말 영재성이 있는 학생에게는 차별화된 교육의 기회를 줘야 잠재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고 거듭 주장한다. 창의력과 우수한 두뇌가 중요한데 어릴 때 영재라는 소리를 듣던 학생이 고교와 대학을 거치면서 둔재로 바뀌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과학영재학교 설립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0년. 당시 부산시교육청 과학기술정보과장이었는데 영재 육성을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영재교육진흥법이 그 해 국회를 통과하자 “이거야”하며 무릎을 쳤다.
문 교장은 그때부터 영재학교 설립을 위해 돌아다녔다. 교육방법과 우수교사 및 재원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외국 사례를 수집하며 계획안을 만들었다.
2001년 10월 초 과학기술부에 영재학교 설립 신청서를 냈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이 동시에 지원했지만 사전 준비가 월등했던 부산시 교육청만이 유일하게 설립허가를 받았다.
그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이스라엘 등의 영재학교를 돌아다니며 영재교육 노하우를 벤치마킹했고 교사 선발과 교재 및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고 잘못되면 학생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에 밤잠이 오지 않았죠.”
2002년 3월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전신인 부산과학고 교장으로 발령받았다. 가장 큰 고민은 학생 선발이었다.
“전국에서 뛰어난 과학영재가 와줘야 하는데 수능 준비 대신 창의력 교육을 한다는 학교에 보냈다가 대학에 못 가는 것이 아닌지 불안해하는 학부모가 많았거든요.”
유명 대학을 돌아다니며 영재과학고 학생을 위한 특별전형을 하도록 요청했지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제외하고는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일반 학생과의 형평성 문제도 문제지만 아직 뽑지도 않은 학생들의 수준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영재학교 교육과정에 따라 공부하면 오히려 대학에서 ‘러브콜’을 받을 것이라고 학부모를 설득했다. 10 대 1이 넘는 경쟁률 속에 2003년 3월 평균 지능지수(IQ)가 145에 이르는 학생 144명을 선발했다.
첫발을 내딛는 중등 영재교육에 대한 부담감은 의외로 컸다.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고민하느라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교육 전문가들과의 수많은 토론, 각계의 의견 수렴, 외국 사례를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은 ‘민족의식을 가진 글로벌 리더’였다.
문 교장은 “빨래와 방청소 등 신변 정리에서부터 올바른 역사관, 예능, 세련된 매너를 동시에 갖춰야만 국제 사회에서 대과학자로 성공할 수 있다”며 “자신의 능력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교는 학생의 예체능 수업과 특별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한국 역사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문 교장의 다른 걱정은 졸업생들이다. 토론식 수업과 연구프로젝트 수행, 논문 작성 등 일반 고교와는 전혀 다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평범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재는 대학의 학부과정을 졸업할 때까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국내 대학에는 그런 시스템이 거의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초중고교까지 이어져 온 영재교육이 대학에서 단절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죠.”
그는 요즘 영재교육진흥법을 개정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찾아다니고 영재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영재교육은 초중고교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법조항을 넣어 대학이 우수 학생을 특별 관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다.
그는 “15년 안에 황우석(黃禹錫) 교수나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과학영재학교 졸업생 중에서 나오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부산=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 문정오 교장은
△1968년 부산대 공대 전기과 졸업
△1968년 고교 교사로 교육계 투신
△1978∼1988년 부산공업대, 동의공업대 강사
△2000∼2002년 부산시교육청 과학정보기술과장
△2002년∼현재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장
△현재 과학기술부 과학영재교육추진위원, 중앙영재교육 진흥위원, 한국올림피아드 운영위원
▼전문과목 교사 70%가 박사… 학생 IQ 평균 145▼
한국과학영재학교 3학년 학생 전원이 대학 수시 2학기 모집에 합격해 진학이 확정된 학생들이 교정에서 문정오 교장(왼쪽)과 함께 자신에 찬 모습으로 기뻐하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은 120여 개의 선택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170학점을 따면 졸업한다.
수업은 주로 실습과 토론으로 이뤄진다. 교육의 핵심인 과학과 수학은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지 않고 원리 자체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가르친다.
진학할 대학의 학점을 미리 따는 AP(Advanced Placement)제도와 대학교수의 개인지도형식인 R&E 프로그램도 독특하다.
학생들은 R&E 프로그램을 통해 주말이나 방학 때 서울대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에서 76명의 교수와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봉사활동 등 특별활동을 3년간 120시간 이상 이수토록 하는 것도 일반 고교와 다른 점이다.
전문과목 교사의 70%가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대학교수 12명도 가르친다. 러시아인 수학자 2명도 근무하고 있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올해 첫 대학입시에서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 3학년 138명 전원이 포항공대와 KAIST를 비롯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국내외 유명 대학에 합격했다.
특히 수시2학기 모집에서 KAIST에 지원한 106명이 모두 합격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한 고교에서 100명이 넘는 KAIST 합격자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학기 수시모집에서 △MIT 1명 △컬럼비아대 1명 △포항공대 15명 △KAIST 10명 △연세대 4명 △인제대(특채)에 1명이 각각 진학했다.
학교 측이 재학생과 2006학년 입학예정자 576명을 분석한 결과 지능지수는 140대가 50.1%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130대 25.4% △120대 14.2% △150대 10.1%로 나타났다. 최고는 156, 평균은 145였다.
부산=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