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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고승철]먹물들의 ‘기업 때리기’ 오류

입력 | 2005-10-19 03:00:00


신간들을 훑어보면서 소설가 조성기 님이 쓴 ‘유일한 평전’을 발견하고 적이 놀랐다. 정통파 작가가 기업인을 소재로 한 책을 쓰는 사례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더러 기업인에 대한 평전이나 소설이 나오긴 했으나 대개 기업의 요청에 따라 2류, 3류 작가들이 쓴 것이었다.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1895∼1971) 박사의 일대기인 ‘유일한 평전’은 감동을 준다. 유 박사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한국현대사의 간난(艱難)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는 9세 때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 가 넓은 세상을 체험했고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다. 국민 건강을 위해 제약업을 시작한 그는 “정성껏 좋은 약품을 만들어 동포에게 봉사하겠다”면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작가는 “존경하는 세 사람에 대한 평전을 쓰고 싶었는데 이번이 그 두 번째 책”이라고 밝혔다. 작가는 기독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한경직(1902∼2000) 목사에 대한 평전을 이미 낸 바 있다.

소설가 이창동 님이 1996년에 출간한 ‘집념’이란 전기(傳記)소설을 접하고서도 놀란 적이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자 박인천(1901∼1984) 회장의 일대기인데 문제의식이 있는 작가가 그런 작품을 쓴 것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광복 직후 광주에서 택시 2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오지 곳곳에 버스를 운행하는 사업은 공익과 사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었다. 남을 배려하는 박 회장의 인격, 고객을 위한 철저한 서비스 일화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문인들은 흔히 낭만주의 세계관을 가져 물질적 성과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특성을 싫어한다. 산업혁명기를 다룬 대부분의 작품에는 장시간 작업에 시달리는 노동자,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그려져 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동하 님은 ‘왜 대다수 문학인은 그렇게도 자본주의를 싫어하나?’라는 글에서 자본주의엔 신화(神話)가 결여됐기에 신화를 꿈꾸는 문인들이 혐오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신화의 세계란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풍요롭게 사는 유토피아를 지칭하는 것이리라. 현실에서는 유토피아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이를 채울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다”는 경제학 원리 하나만 봐도 깨달을 수 있다.

자본주의, 기업, 기업인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문인들의 성향은 다른 ‘먹물 그룹’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학자, 정치인, 관료, 법조인은 대체로 기업인을 과소평가하며 그 위에 군림하려 한다. 이들은 ‘생산’보다는 ‘정의’를, 실사구시보다 명분을 좇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크든 작든 권력이라는 칼자루를 쥔 사람은 자신의 기여분보다 더 많은 몫을 챙긴다.

비리에 연루된 기업, 기업인을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기업 때리기’ 분위기 탓에 기업인이 잇속만 챙기는 파렴치한 인간상으로 알려지는 데 대해서는 좌시하기 곤란하다. 대다수 기업은 법질서를 지키며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숱한 기업인은 도산이라는 최악의 위험을 안고 뛴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는 말도 소수에게만 해당된다.

기업이 도산하면 종업원은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되지만 기업인은 패가망신(敗家亡身)한다. 공무원, 공기업 직원, 국공립학교 교원은 도산 위험의 무풍지대에 있으므로 민간기업의 절박함을 모른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인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런 무풍지대에 몰리면 그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기업인이 존경 받는 나라, 존경 받는 기업인이 많은 나라, 그런 나라가 선진 부국이다. ‘먹물 그룹’이 기업인을 사갈시(蛇蝎視)하지 않아야 풍요롭고 성숙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