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이별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새드 무비’. 놀이공원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수은(오른쪽)은 초상화를 그려 주는 일을 하는 상규에 대해 남 모를 사랑을 키워 간다. 사진 제공 필름마케팅 비단
한편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던 하석(차태현)은 자신을 떠나려는 할인점 종업원 숙현(손태영)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돈벌 궁리를 하다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대신해 주는 ‘이별대행업’에 나선다. 하석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주영(염정아)에게 그 아들 휘찬(여진구)이 보내는 안타까운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영화 ‘새드 무비’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는 이 영화가 최근 논란이 된 연예기획사의 영화 제작 진출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이다. 중심인물 8명 중 아역배우를 제외한 7명의 ‘어른’은 모두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싸이더스HQ 소속 스타들. 영화를 제작한 곳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얼굴 없는 미녀’ ‘S 다이어리’를 만든 영화제작사 아이필름으로, 싸이더스HQ의 자회사다.
둘째는 소재가 아닌 정서를 영화제목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울리기’가 마치 상업적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처럼 돼 버린 최근 충무로 분위기에서 감정 상태를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인 ‘새드(sad·슬픈)’를 제목으로 사용한 대목이다.
이 두 가지는 고스란히 ‘새드 무비’의 승부처가 된다. ‘새드 무비’는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먼저 물경 일곱 명의 ‘별’들을 영화 표 한 장 값에 모조리 몰아 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가 하는 것, 그 다음은 정말 슬프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스타를 제대로 보여 줬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진정 슬픈 영화가 되지 못했다. 스타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지만, 마치 스크린과 객석 사이에 유리벽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눈물은 거리감을 두고 다가온다. 관객보다 배우들이 더 울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건, 이 영화가 ‘순간’과 ‘아이디어’에는 강했지만 정작 보는 이의 공감을 사고 그들의 마음을 훔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CF 뺨칠 정도로 수채화 같은 장면(진우와 수정이 소방차 사다리 끝에 올라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모습)과 시적인 대사(“난 불 속에서 여자를 구해 봤고 물에 빠진 남자도 구했어. 이젠 사랑에 빠진 한 남자를 구하고 싶어”라는 진우의 구혼 멘트)가 차고 넘친다. 하석이 ‘이별대행업’으로 결국 자신의 이별을 ‘대행’하게 되는 삶의 아이러니나, 청각 장애를 통해 사랑과 소통의 문제를 제기한 점도 아이디어가 빛난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이별이 어떤 폭발력을 가질 만큼 감정의 나이테를 켜켜이 쌓지 못한 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만 슬픔의 정서를 의존한다. 이는 신파조로 흐르지 않고 세련되게 이별을 말하겠다는 이 영화의 태도가 동화 속 왕자와 공주 같은 매력적인 스타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예상된 결과인지 모른다.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건 순간의 이미지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앞서 인간의 숨결이 깃든 설득력 있고 깊은 이야기임을 ‘새드 무비’는 ‘슬프게’ 확인시켜 준다. 우는 데도 까닭은 필요하다. ‘S 다이어리’의 권종관 감독 연출. 20일 개봉.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