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연정 씨
《그에게 과학실험은 한때 목숨마저 위협한 존재였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실험 때문에 평생 후회 없이 자신만의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장인순(65) 고문. 올 4월 소장 직을 마지막으로 27년간의 ‘현역’ 활동을 마친 장 고문은 한 마디로 한국 원자력발전 역사의 산증인이다.》
○ 핵연료 필수원소인 불소 실험하다 폭발
핵연료 제조공정 국산화 성공, 한국표준형 원자로 개발,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개발 등 굵직굵직한 연구성과를 이끌어온 주역이다.
장 고문이 원자력발전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1974년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 화학과 실험실에서의 폭발사고였다. 자연에서 가장 불안전하다고 알려진 원소인 불소를 다루는 게 그의 박사과정 연구주제였다.
“어느 날 불소화합물을 합성하던 중 폭발사고가 났어요. 다행히 얼굴은 무사했지만 팔과 복부에 심한 화상을 입었죠.”
그는 허벅지 피부를 떼어내 오른팔에 이식하는 대수술을 마쳤다. 40일간의 입원과 2년간의 통원치료를 거쳤다. 가장 큰 문제는 실험에 대한 극심한 공포감.
“좀처럼 실험실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났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실망할까봐 다시 용기를 냈죠.”
○ 유학길에 받은 ‘어머니의 태극기’
1969년 유학길에 오르기 전날 밤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셨다. 눈물을 흘리며 몇 마디 당부하시더니 하얀 종이에 곱게 싼 물건을 건네주고 조용히 방을 나가셨다. 풀어 보니 태극기였다. 마음이 너무나 숙연해졌다.
장 고문이 실험실 폭발 사고의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평생 아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아내던 어머니, 그리고 태극기였다.
지도교수가 위험하니까 실험주제를 바꾸라며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몰래 연구에 매진해 예정보다 3년 늦게 197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불소가 원자력발전 원료를 만드는 과정에 필수적으로 포함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죠. 마침 한국에서는 경제부흥을 위해 원자력연구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막 형성되던 때였어요. 주저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장 고문이 1979년 3월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왔을 때 연구여건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실험대는 나무상자를 쌓은 위에 비닐을 덮은 것이 고작이었고 연구원은 5명에 불과했다.
○ “원자력과의 만남 내 생애 최대 행운”
그러나 원자력발전이 곧 국력이라는 믿음으로 불철주야 연구에 임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성과 중 하나는 1989년 핵연료 제조 공정을 국산화시킨 일이었다.
원자력발전에 사용되는 핵연료는 주로 분말 형태로 이루어진 이산화우라늄인데 이를 ‘도자기처럼’ 단단하게 구워 원자로에 넣는다.
장 고문은 바로 이산화우라늄 분말을 만들어내는 공정을 국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 기술을 수입하려면 400억 원이 필요했는데 이를 불과 120억 원의 연구비로 실현시켜 낸 것.
“원자력과의 만남이 제 생애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다만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어요. 핵연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인 농축우라늄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는 일이죠.”
그는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적 우려 때문에 농축우라늄 전량을 수입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원자력발전이라는 평화적 목적을 위해 우라늄 농축 기술을 국산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장인순 고문은
194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도시락을 거의 싸다니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고등학교 때 논리가 정연하고 대답이 확실한 수학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 ‘과학의 기본은 수학’이라고 외치고 다닌다. 고려대 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64년 미국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나려 했지만 건강검진에서 ‘결핵 판정’이 나 몇 년간 요양생활을 했다. 1979년 한국원자력연구소 핵화공연구실장 및 화공재료연구부장을 시작으로 연구소장을 지낸 2005년 4월까지 국내 원자력발전 연구에 매진해 왔다. 1985년 국민훈장 목련장, 1988년 과학기술처장관상(연구개발상), 2005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받았으며 2000년부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원자력에너지자문위원(SAGNE)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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