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의 대인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첫 인사말은 “어머 눈이 참 예쁘시네요”로 시작하던 적이 있었다. 기능(시력)은 형편없었지만 그것을 담고 있는 구조물의 크기에 기인하던 말이었는데 이제 그 인사말은 열에 아홉이 “어머 실물이 참 나으시네요”로 바뀌었다.
사실 ‘저 얼굴을 벗기면 뭐가 나올까’라는 생각 대신 ‘저 여자 화장을 조금만 더 하면 얼마나 예쁠까’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카메라발보다 실물이 나은 것이 훨씬 좋지 않느냐고 자위도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 힐끔 얼굴을 쳐다볼 때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머리카락을 자르듯 얼굴을 바꿔 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케이블방송을 보다가 정말이지 그런 부질없는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성형수술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백조’라는 이 프로그램은 아주 평범하게 생긴 두 여성을 일정한 장소에 데려와 다이어트와 성형수술 심지어 심리치료를 병행해 둘 중 누가 더 예쁜가를 마지막에 확인시켜 준다.
프로그램에 당첨된 여성들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꿋꿋이 이 과정을 버텨내고 이 운 좋은 백설공주들은 마지막에 가서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이때 대개의 참가자들은 확연히 날씬해지고 이목구비가 또렷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면은 끔찍했다. 혐오스러웠다. 대체 살을 도려내고 조각내는 장면조차 여과 없이 방영하는 비윤리적 태도며, 험난하고 힘든 수술 과정을 단 몇 분에 축약하는 편집술이 가진 비인간성, 몸 곳곳에 주입된 플라스틱과 실리콘 덩어리를 달고 행복해하는 그녀들과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경쟁시킬 수 있다고 믿는 뻔한 의도까지.
이 프로그램은 여성의 육신을 멍들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선을 모두 집대성한 ‘추악한 시선의 도시’처럼 보였다. 여성의 육체를 사회가, 다른 이들의 시선이, 함께 나누어 먹는 거대한 뱀파이어였다.
인간은 마음 속 깊이 자아 변용에 대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자신의 마음의 영토에 대한 확장과 변용이지 겉모습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피부란 일종의 삶을 기록하는 종이 같아서 그곳에 새겨진 세월의 지문들은 자신의 역사 그 자체가 된다. 그러므로 이 프로그램의 제목 ‘백조’는 전적으로 틀렸다. 미운 오리 새끼는 성형수술을 해서 백조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이 백조였던 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좀 더 높은 값에 자신을 시장에 내놓으려 온 몸을 난도질 하네. 그녀는 뇌의 일부분을 가슴에 가득 채워 넣고 오늘도 상냥히 웃네.’
밴드 ‘자우림’의 실리콘밸리의 한 구절. 문득 임상심리학 수련과정 시절, 38kg의 몸매를 가지고도 운동을 더 하겠다며 추운 겨울날에도 운동장을 돌던 그녀들이 생각난다.
누가 그녀들의 육신을 난도질하는가? 심장 가득 타인의 시선을 들여 놓는가? 지금 우리들의 인간성을 담보하는 것은 백조 한 마리의 육신이 아니라 축 늘어진 가슴과 점점 깊어지는 주름살을 가진, 있는 그대로의 오리들, 아니 우리들의 얼룩진 영혼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심리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