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이 영양소 결핍이 아니라 영양 과잉에 따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영양학회가 이번에 제정한 영양섭취기준(DRIs)도 과거와는 달라진 체위와 식사 패턴 및 영양소 섭취량의 변화상을 반영해 새로운 섭취량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남녀 및 연령대별로 다르게 섭취해야=DRIs는 에너지를 내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적정 비율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갈수록 지방의 비율이 높아져 상한선을 정해줄 필요가 생겼기 때문.
국민영양조사에 따르면 1969년 한국인이 섭취하는 영양소 비율은 탄수화물 80.3%, 지방 7.2%였지만 2001년에는 탄수화물이 65.6%로 준 대신 지방이 19.5%로 증가했다.
DRIs는 20세 이상의 경우 탄수화물의 적정 비율을 55∼70%, 지방은 15∼25%로 정했다. 3∼19세는 지방의 비율을 15∼30%까지 허용했다. DRIs는 한국 청소년들의 지방 섭취 비율이 미국의 평균 지방 섭취 비율인 20∼35%에 근접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단백질의 경우 연령에 따라 섭취하는 양이 달라져야 한다. DRIs는 20대부터 40대까지는 하루에 45g(계란 7.5개)의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지만 50대 이상은 40g(계란 6.5개)이 필요하다.
칼슘은 남녀 성별에 따라 섭취량의 흐름이 달라진다. 남자는 10대의 경우 900mg(멸치 209g), 20대부터는 계속 700mg(멸치 163g)의 섭취를 권장했다. 반면 여자는 10대에 800mg을 섭취하도록 권장했고 20∼40대는 700mg으로 줄었다가 50대 이상은 다시 800mg을 섭취하도록 했다. 폐경기 여성은 만성질환 및 뼈엉성증(골다공증) 예방을 감안해 칼슘 100mg(23g)을 더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지적됐다.
요오드는 미국인들의 경우 식사에 함유된 양이 부족해 요오드가 첨가된 소금을 추가로 섭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해조류와 어패류를 많이 먹는 한국인은 요오드를 과잉 섭취하기 쉽다. 최근 조사에서 미역국을 많이 먹는 산모의 경우 하루 요오드 섭취량이 권장 섭취량의 3∼10배에 이른다는 결과도 나왔다.
DRIs는 요오드의 권장섭취량을 미국과 같은 수준인 하루 150μg으로 정하고 상한섭취량은 3mg(미역이나 다시마 약 3g에 함유)으로 정했다. 미국의 1.1mg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지만 현실을 감안한 수치다.
▽비타민도 많이 먹으면 해롭다=우리가 흔히 많이 먹어도 무방한 것으로 알려진 비타민C의 과잉 섭취에 주의가 필요하다. DRIs가 정한 비타민C의 상한섭취량은 2000mg. 하루에 이 양을 넘기면 민감한 사람의 경우 구토, 복통, 설사와 심할 경우 신장 결석이나 통풍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장운동을 촉진하고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등의 기능을 하는 식이섬유는 한국인들에게 많이 부족한 영양소 중 하나다.
1970년대만 해도 평균 하루에 25∼30g을 먹었지만 1990년대에는 15∼20g으로 섭취가 줄어들었다. 식이섬유가 많이 든 잡곡밥 열무 콩의 섭취량이 준 탓이다. 30∼49세의 남자는 29g, 여자는 23g의 식이섬유를 섭취하도록 DRIs는 권장했다.
▽‘맞춤형’ 영양 기준=30세인 홍길동 씨는 키 175cm, 체중 76.5kg이고 매일 1시간씩 아침에 조깅을 한다. 동갑인 김철수 씨는 키 170cm, 체중 54kg이고 사무직이며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에너지 섭취량은 얼마일까?
2000년 마련된 제7차 영양권장량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에너지 권장량은 2500Cal로 같다. 영양권장량은 연령에 따라서만 에너지 필요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DRIs에 따르면 홍 씨에게 필요한 에너지량은 3500Cal이고 김 씨는 2100Cal다. 홍 씨가 김 씨보다 하루에 자장면 한 그릇과 비빔밥 한 그릇을 더 먹어야 필요한 열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DRIs는 키 몸무게 활동량에 따라 자신에게 필요한 열량을 알 수 있도록 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건강식단 이렇게…▼
“이렇게 먹으면 건강해져요.”
한국영양학회가 영양섭취기준(DRIs)에 따라 처음으로 마련한 표준 식단은 한국인들이 놓치기 쉬운 영양소와 과다 섭취의 우려가 있는 영양소들이 고려됐다.
주식인 밥은 수수밥(아침), 흰밥(점심), 보리밥(저녁)이 제시됐다. 잡곡밥의 경우 흰쌀에는 식이섬유가 적어 이를 보충하기 위해 수수 보리 등을 넣은 것. 또 식이섬유를 보충하기 위해 과일은 주스 대신 생과일을 먹도록 권장했다.
국은 미역국, 뭇국, 얼갈이배춧국으로 정했다. 해조류와 야채류의 적절한 조화를 고려했다.
한국인이 먹는 식단에서 가장 부족한 영양소는 칼슘이다. 미국 DRIs의 칼슘 권장 섭취량은 하루 1000mg(추어탕 한 그릇에 담긴 칼슘은 700mg)이지만 한국인은 보통 하루에 400mg의 칼슘을 섭취한다. 칼슘 섭취가 저조한 이유는 한국인은 유럽 및 미국인들과는 달리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 섭취가 일상화되지 않았기 때문.
DRIs는 칼슘의 권장 섭취량을 청소년은 1일 800∼1000mg, 성인은 1일 700∼800mg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청소년과 성인에게 맞도록 식단을 각각 A, B로 나눠 A 패턴에서는 우유 2컵, B 패턴에서는 우유 1컵을 마시도록 했다. 실제 식사 이외에 칼슘을 500mg 더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저지방우유를 하루 2잔 정도 마시는 것이다. 칼슘우유로는 1컵이면 된다.
반대로 나트륨은 지나치게 많이 섭취해 문제인 경우. 과다한 나트륨 섭취는 고혈압과 심장병의 원인이 된다. 미국의 경우 나트륨의 상한 섭취량이 하루 2300mg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번에 상한 섭취량을 정하지 못했다. 한국인이 섭취하는 나트륨의 양이 너무 많아 현실성 있는 상한 섭취량을 정할 수 없었던 것.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안대로 나트륨 상한 섭취량을 하루 2000mg 목표치만 제시했다.
흔히 즐겨먹는 라면 한 그릇에 들어 있는 나트륨양이 2200mg이며 칼국수는 3300mg이다. 김치와 젓갈에도 많은 나트륨이 들어 있다.
이번에 정한 식단에 김치가 한 끼밖에 들어 있지 않은 이유도 나트륨을 낮추기 위해서다.
서울대병원 주달래 영양사는 “곡류, 고기·생선류, 채소류 등은 같은 식품군 안에서 변화를 주며 식단을 짜는 게 좋고 가능한 한 싱겁게 먹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영양섭취기준은…▼
영양섭취기준(DRIs·Dietary Reference Intakes)은 현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사다.
미국은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할 군인들에게 필수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해 처음으로 영양권장량을 마련했다. 미국은 이어 1994년 바뀐 식사 패턴에 맞춘 새로운 섭취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DRIs 제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후 캐나다와 함께 지난해까지 10여 년에 걸쳐 영양소별로 DRIs를 확정해 발표했으며 일본 독일 호주 필리핀 등 여러 국가도 최근 DRIs를 만들거나 제정 과정에 있다.
1962년 처음 영양권장량을 만든 이후 2000년 제7차 개정판을 발표한 한국영양학회는 2005년 8차 개정 대신 DRIs를 정하기로 결정하고 2002년 작업에 들어갔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