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녀들이 가끔 남에 와서는 “역시 북녀(北女)”라는 찬탄을 자아냈다. 체제선전극 ‘아리랑’에서 카드섹션을 펼치는 소년 소녀들도 무심코 보면 야무지기만 하다. 그러나 등신대(等身大)의 북한은 다르다.
북에선 16세 소년이면 군에 간다. 1994년 7월까지는 키가 150cm 이상이면 됐다. 그해 8월부터는 148cm, 재작년부터는 145cm로 입대 가능한 키의 기준이 낮아졌다. 남한 동갑내기 소년의 평균 키는 172.7cm다.
남북의 60대 남자 키는 비슷하게 평균 164cm를 조금 넘는다. 1980년대부터 남대북소(南大北小)가 가속됐다. 남한 14세 소년의 평균 키는 할아버지를 내려다보는 167.8cm로, 탈북(脫北)한 또래보다 16cm 남짓 크다.
63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제외한 북한 권력서열 20위까지의 평균 나이는 79세다. 주민의 평균수명은 남자 60.9세, 여자 66.8세다. 남한의 남자는 평균 73.8세, 여자는 81.2세까지 산다. 북보다 13∼14년 장수를 누린다.
유엔아동기금 평양사무소 타우피큐 무즈타바 부대표는 “해마다 7세 미만 북한 어린이 4만 명이 심각한 영양결핍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남은 1년 복지예산이 50조 원에 이르지만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가 하면 ‘너무 잘 먹어서도’ 문제다. 한국영양학회는 내달 초에 ‘더는 먹지 말아야 할’ 영양섭취 상한선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순영 서울대 생물인류학 교수가 소개한 세계적 연구에 따르면 영양실조는 지능 저하, 정서 발달 장애, 학습능력 저하와 관계 있다. 사람의 두뇌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간은 태어나기 3개월 전부터 태어나서 2년까지이고, 영양결핍에 특히 취약한 시기는 생후 1년까지다. 이때 심한 영양결핍을 경험하면 두뇌의 크기와 무게, 신경세포 수가 감소하고 뒤에 치료를 하더라도 회복 불가능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북의 지난해 국민총소득은 남의 33분의 1이고, 주민 개인소득은 16분의 1이다. 1960년대는 북의 개인소득이 남보다 많았다. 광복 당시 북쪽의 발전량(發電量)은 남의 16배가 넘었다. 북은 1948년 전기요금 미납을 이유로 남에 대한 전력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지난해 북의 발전량은 남의 6%다. 올해 3월, 남한 전기가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가기 시작했다.
원래 남쪽 사람들이 북쪽보다 훨씬 부지런하거나 머리가 월등하게 좋았던가. 정치적 인권은 사치라고 할 만큼 참담한 북한 주민들의 생존 현실은 체제가 낳은 비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김정일 체제의 ‘대남(對南) 작업’은 갈수록 위력적이다. 남에서는 체제 우위를 부정하고,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숭김(崇金) 통일꾼’들이 호흡을 잘 맞추고 있다. 김일성 수령의 만경대정신으로 통일하여 남도 북처럼 되자고 한다.
아직 다수 국민은 이들이 만들려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정체성(正體性)에 혼란이 일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살을 강요하는 숭김파의 ‘체제 물타기’ 공세는 멈출 조짐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은 한나라당을 향해 “더 이상 대한민국을 흔들지 말라”고 역공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체제의 위기를 감지하는 국민에게 행동으로 답해야 할 단계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도전을 ‘자유’라는 미명(美名)으로 계속 감쌀 것인가. 20세기 세계사의 최대 사건이 공산주의의 몰락이었음을 직시하고, 체제 물타기에 단호히 대처할 것인가.
정권의 속내에 대한 의심이 터무니없음을 입증하려면, 북을 바꾸는 행동에도 나서야 한다. 북이 핵을 버리고 개방, 민주화, 인권 신장을 통해 국제적 신뢰를 얻고 이를 통해 체제 안전과 주민 삶의 개선을 동시에 이루는 ‘정상 국가’가 되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이것이 정권이 강조하는 남북 문제에 대한 ‘주도적 역할’의 핵심이 돼야 한다.
북은 남의 경제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노 정권이 대한민국 정체성의 수호자임이 분명하다면 ‘퍼주기’를 넘어 ‘나라 내주기’로 가고 있다는 일부의 시각이 기우(杞憂)임을 행동으로 입증할 힘은 있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