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6집 음반을 발표하는 가수 이은미. 전영한 기자
“아유, 사진 안 찍으면 안 돼요? 연출하고 그런 거 체질적으로 저랑 안 맞는데… 머리는 왜 또 2 대 8 가르마가 됐지?”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지하 연습실. 옅은 화장을 한 가수 이은미(38)가 만나자마자 사진기를 보며 툴툴거린다. 그러나 밴드의 반주에 맞춰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딴사람이 됐다.
“뭘 부를까… 얘, 피아노 반주를 좀 더 쪼개서 해봐.”
새 음반 수록곡 ‘사랑이 지나가면’을 부르며 살포시 눈을 감는다. 촬영 때문에 불만이 가득했던 입도 쑥 들어갔다. 그녀에겐 노래가 약이다. 음악에만큼은 순종할 수 있었기에 11월 8일 발매 예정인 6집 음반도 가능했을 것이다.
“한 장의 음반을 만드는 것은 늘 살아있는 동물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죠. 계획대로 음반 작업을 해도 결과는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 나를 아껴준 사람들 위해 노래
―4년 만의 새 음반이네요. 마치 세월을 잊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
“2003년 말 딱 6개월만 쉬고 새 음반을 만들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왜 음악을 하고 있는 걸까’ 회의가 들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해인사로 찾아가 산속에서 지냈어요. 그러다 스님에게서 ‘지금까지 널 위해서 노래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너를 아껴준 주위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해봐라’라는 가르침을 받았죠.”
―6집 음반 제목 ‘마 논 탄토’는 음악 용어로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를 뜻하는데….
“전 운이 좋은 가수였어요. 제게 붙은 별명인 ‘맨발의 디바’는 데뷔 30년도 안 된 가수가 들을 칭호가 아니었답니다. 6집은 그런 허울에서 벗어난 앨범이고 싶어요. 신발을 벗든 신든 중요한 건 내 목소리가 무엇인지, 날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는 거죠.”
데뷔 13년째 그녀가 배운 것은 ‘노래’가 아닌 ‘소리’였다. 앨범 첫머리에 수록된 어쿠스틱 발라드곡 ‘아카시아(숨겨진 사랑)’는 아카시아 꽃잎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구슬픈 목소리에 담았다. 짝사랑의 아쉬움을 노래에 담은 ‘애인 있어요’, 세상에 대한 조롱을 무미건조한 창법으로 표현한 테크노 곡 ‘미스 하이드’,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한 ‘세월이 가면’ 등 수록곡 13곡 모두에서 그녀는 ‘힘’을 뺐다.
○ “마흔… 나이에 굴복할까봐 겁나요”
1992년 발라드 곡 ‘기억 속으로’로 데뷔해 1993년 2집 ‘어떤 그리움’으로 인기를 이어간 이은미. 맨발로 무대에 500회 이상 올랐고 ‘가창력’도 인정받았다. 그렇게 노래 하나만 보고 살아온 그녀, 이제 2년 후면 마흔이다.
“제 성격이 괴팍해요. 완벽주의고…. 그런데 나도 마흔이 된다고 생각하니 나이에 굴복할까봐 겁이 다 나는 거 있죠. 이번 음반에 ‘날아라 제임수딘’이란 곡이 있어요. 예전에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초라해진 어떤 선배의 얘기랍니다. 어쩌면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죠.”
11월 중국 공연, 12월부터는 전국 20개 도시 투어… 미혼인 그녀에게 결혼은 아직도 저 먼 곳에 있는 듯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