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 사진제공 EMI
세계 오케스트라의 ‘황제’로 불리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4년 동아일보 초청으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내한했던 베를린 필이 2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이번에는 영국 출신의 거장 사이먼 래틀 경이 136명의 최정예 단원(스태프 포함 160명)을 지휘한다. 11월 7, 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 젊어진 사운드, 세계 최고의 앙상블
“21년 전과 비교하면 베를린 필은 확연히 젊어졌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운영도 1970, 80년대에 비하면 훨씬 민주화됐다. 무엇보다 사운드 측면에서 크게 변화했다. ‘울림(sonority)’이 훨씬 투명해졌다.” (헬무트 메베트·62·베를린 필 경력 36년·제1바이올린 주자)
베를린 필 이사진의 고문 역할을 하는 ‘5인 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인 헬무트 씨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21년 전 베를린 필의 음색을 기억하는 한국 팬들을 위해 이같이 설명했다.
123년 역사의 베를린 필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922∼1954년)에 이어 카라얀(1955∼1989년)이 수많은 음반 녹음과 콘서트를 통해 중후하고 화려한 색채, 폭발적인 사운드의 오케스트라로 완성시켰다. 카라얀 사후 독일 통일을 겪으면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89∼2002년)의 시대에 절반 이상의 단원이 교체됐다.
특히 1990년대 오디션을 통해 입단한 플루트 에마뉘엘 파후드, 오보에 알브레히트 마이어, 클라리넷의 벤첼 푸크스 등 천재적인 20대 목관주자들은 세련되고 정제된 음색으로 사운드의 세대교체를 주도했다. 완벽한 합주력을 자랑하는 베를린 필 단원의 현재 평균 연령은 38세.
○ 다양해진 레퍼토리, 사이먼 래틀
2002년 9월 단원들의 투표로 21세기 새 상임지휘자로 뽑힌 인물은 영국 출신의 래틀 경. 그는 1980년 25세의 나이로 영국 버밍엄 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맡아 이 오케스트라를 일약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60개가 넘는 음반을 녹음해 세계적인 음반상을 휩쓸었다. 그는 베를린 필을 맡은 뒤 새로운 레퍼토리 발굴, 음반 녹음, 교육 프로젝트 등을 통해 베를린 필의 중흥을 이끌고 있다.
베를린 필은 한 중 일 대만 등 4개국 6개 도시를 순회하는 이번 아시아 투어에서 ‘영웅’을 주제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에로이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 라벨 무용 모음곡 ‘마메르 르와’, 하이든 ‘교향곡 86번’ 등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선곡이다. 특히 래틀 경은 올 초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현대음악가 아데 씨의 곡인 ‘아쉴라’에 대해 “한국 초연이니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귀띔했다. 음악칼럼니스트 유정우 씨는 “사이먼은 대규모 편성곡에 있어서는 카라얀 못지않은 화려한 색채감과 웅장한 스케일, 다이내믹한 강약을 이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세계 최고의 솔리스트로 활약하는 단원들
베를린 필은 1882년 창단 때부터 신입 수석단원, 평단원에 대해 1, 2년의 인턴 기간 후 동료 단원들이 신임투표를 거쳐 정단원으로 선발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지휘자 선출, 음반사 선정 등 모든 의사결정을 단원들의 투표로 결정하며 외부의 간섭은 철저히 배제한다. 이것이 단원들이 바뀌어도 베를린 필의 절대음감이 변하지 않는 비결.
베를린 필은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 어디에서든 정상급으로 통하는 독주자들로 구성돼 있다.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후드 등은 1년에 절반 정도는 세계 각국에서 독주회를 연다. 베를린 필 산하에는 전현직 베를린 필 단원들로 구성된 30여 개 단체(베를린 체임버 뮤직 그룹)가 활동하고 있다. 02-6303-1919, www.bpo2005.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