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이 국정원장까지 공모해 여야 정치인뿐 아니라 대통령 주변 인물의 휴대전화까지 불법 감청(도청)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국정원의 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26일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을 도청 주도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당시 국정원장도 김 전 차장과 공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임, 신 전 원장을 이번 주말부터 차례로 불러 조사한 뒤 사법 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두 사람 외에 8국(과학보안국)장, 운영단장, 종합운영과장 등 국정원 감청담당 부서 전현직 직원 수십 명에 대해 김 전 차장과 공모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김 전 차장의 독려 하에 국정원 감청담당 부서인 8국 내 R-2(유선중계통신망을 이용한 감청장비) 감청팀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시절 체육복표 사업 등 각종 이권에 개입했던 최규선(崔圭善) 미래도시환경 대표의 휴대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도청했다고 밝혔다. 시기는 2000년 10월에서 2001년 11월 사이다.
국정원 R-2 감청팀은 2001년 4월 김윤환(金潤煥·작고) 당시 민국당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 간의 ‘민주당, 자민련, 민국당의 정책연합’에 대한 통화 내용도 도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7, 8월에는 남한에 망명해 온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과 관련된 통화 내용을 도청했다.
이어 9월에는 이완구(李完九) 당시 자민련 의원과 자민련 관계자들 간에 오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과 관련된 통화 내용도 도청했다.
R-2를 이용한 휴대전화 도청은 정치인, 경제인, 고위 공직자 등의 휴대전화 번호를 미리 입력해 24시간 이뤄졌으며, 하루 평균 수십 건씩 했다.
도청된 내용은 대화체 형식으로 요약돼 하루 평균 7, 8건씩 ‘통신첩보’ 보고서 형식으로 국정원장과 차장 등에게 보고됐다.
검찰은 일부 도청 정보가 청와대나 정권 실세 등에게도 보고됐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