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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독일 녹색당의 脫이념

입력 | 2005-10-27 03:01:00


유럽 대륙에서는 150년의 역사를 갖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현존하는 정당으로 가장 오래됐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사민당은 카이저 독일에선 ‘조국 없는 패거리’로 사갈시되고 불법화되기도 했었다.

사민당이 집권하게 된 것은 카이저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하여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하면서부터였다. 사민당은 집권에 따른 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에 이은 1919년 극좌파 스파르타쿠스단(團)의 반란을 사민당의 구스타프 노스케 국방장관은 군부의 힘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해서 ‘피에 주린 개’란 욕을 먹었다. 결국 사민당은 ‘다수파’와 ‘독립파’로 갈라졌고 후자는 독일 공산당을 창당하여 떨어져 나갔다. 그들에겐 사민당과 바이마르공화국이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독일의 제1공화국 말기에는 바이마르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공산당이 나치와 제휴하여 시위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그러나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 사민당과 공산당은 초록이 동색으로 탄압받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은 국토의 분단과 함께 다시 독일사회주의운동의 분열을 불러왔다. 동독에서는 공산당이 사민당을 흡수 통합해서 사회주의통일당의 1당 독재체제를 수립한다. 반면 공산당과의 합당을 거부한 서독의 사민당은 양대 정당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20년 가까이 제1야당으로….

서독에 빌리 브란트의 사민당 정권이 탄생한 것은 1969년. 헬무트 슈미트와 게오르크 레버가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슈미트는 샤를 드골을 따르는 기민련의 ‘대유럽주의’에 맞서 1960년대부터 미국과의 협조를 강조한 ‘대서양주의자’였다. 그의 후임자 레버는 서독 산별노조 중 가장 강력한 금속노조 간부 출신이다.

19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던 노동운동에서 탄생한 정당이 독일 사민당이라면 20세기 과학기술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환경운동에서 탄생한 세계 최초의 정당이 독일의 녹색당이다. 사민당이 집권하여 국정을 담당하기까지는 50여 년이 걸렸으나 녹색당이 사민당과 이른바 ‘로트-그륀(붉고 푸른)’ 연정을 구성하여 집권하기까지는 2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386세대처럼 전후(戰後) 서유럽 반체제 운동의 대명사가 된 ‘68년 세대’ 출신으로 경찰과 맞서 폭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던 녹색당의 요슈카 피셔. 노타이에 운동화를 신고 와서 국회의원 선서를 한 그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연정에 다른 부처도 아닌 외무부 장관으로 입각하게 되었을 때 세계는 운동화 바람의 녹색주의자가 의전(儀典)이 시끄러운 외교무대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자못 호기심에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의 정부에서 여야와 보혁을 초월하여 가장 인기가 있고 퇴임을 가장 아쉬워하는 대상이 바로 피셔 장관이다. 반체제 세력을 체제 내 세력으로 통합하여 전체 사회의 진보에 기여토록 한 업적에 있어 피셔는 브란트에 비교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브란트의 정치적 후손(後孫)은 사민당 아닌 녹색당의 피셔”란 말도 하고 있다.

이른바 원리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사이의 소모적인 당내 논쟁에 침몰하고 있던 녹색당을 이데올로기의 늪에서 끌어올려 현실과 대결토록 한 것이 피셔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녹색당의 ‘탈(脫)이데올로기화’를 최전방에서 이끌어 온 지도자였던 셈이다. 그 결과 앞으로는 보수 기민련과 녹색당의 ‘검고 푸른’ 연정도 가능하리라고 점치는 사람도 있다. 브란트에 의해 기민-사민 양대 당의 ‘검고 붉은’ 대연정이 가능했던 것처럼….

새로 구성될 대연정의 대외정책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 보고들 있는 모양이다. 다만 브란트(1966년) 이후 40년 만에 사민당 출신의 외무장관으로 낙점된 프랑크 슈타인마이어(슈뢰더 총리의 비서실장) 씨는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서 좀 더 적극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르트무트 코시크(독한의원연맹 의장) 의원은 전망하고 있다. 현대미술관 같은 외양의 독일 총리공관에 한국인 작가 엄태정 씨의 청동조각 작품을 설치하기로 한 것도 바로 슈타인마이어 비서실장이었다는 것이다.

최정호 객원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