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학교와 교실을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악을 드러내는 알레고리로 보는 소설들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도 교실을 사회의 척도로 보고 그 안에서 권력의 작동 방식을 구체적으로 그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권력을 주제로 한 우의적인 경향의 소설은 대부분의 경우 그 도식적인 측면 때문에 실패하기 쉽다. 이문열의 이 짧은 작품이 주는 매력은 초등학교 교실이 한국 전체의 상황이 되고, 주인공인 엄석대의 일생이 정치사의 알레고리가 되는 단순한 도식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 있다.
이 소설은 권력의 메커니즘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선 엄석대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보면 그는 직접적인 폭력이나 타율적인 복종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권력의 구조를 잘 보여 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들에서 잘 드러나듯이 직접적인 폭력에 근거하지 않는 억압과 통제는 근대적인 권력행사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권력의 문제를 권력을 휘두르고 행사하는 자의 관점에서만 그린 것이 아니라 권력에 저항하고 길들여지는 과정까지 그 전체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활한 독재자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엄석대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읽는 것은 위험하다. 이 소설을 영웅처럼 군림하던 엄석대의 당당한 모습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화자가 성인이 된 후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을 씁쓸하게 목도하는 줄거리로 요약한다면 지나치게 평면적인 독서가 될 것이다. 엄석대가 지배하는 학급의 이면을 애써 모른 척한 담임선생님이나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에 의해 엄석대가 무너지자 급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는 학생들 모두 권력의 메커니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편이 선이고 어느 편이 악인지를 선명하게 가를 수 없으며 악에 대한 저항 또한 악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냉철하게’ 분석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의 소산이다.
이 소설에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없다는 점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엄석대의 부정을 일시에 무너뜨린 새로 온 담임선생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석대의 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가 선택한 수단은 바로 폭력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훌륭하더라도 그것을 이루어내는 수단이 엄석대의 폭력을 제압하려는 폭력이라면 이 두 폭력은 서로 구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화자가 엄석대의 체제에 대해서나, 그 붕괴에 대해서 다같이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진정한 영웅이란 합리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결정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자각하면서 공정한 무엇인가를 위해 애쓰는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영웅이기에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반드시 4·19혁명 이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국한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작가는 일그러진 영웅이 존재하는 사회, 그 일그러진 모습이 우리 모두의 초상인 사회를 냉철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냉철한 시선 너머에서 또 다른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고 더는 일그러진 영웅을 필요치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열아홉 살 그대들의 몫이다.
박성창 서울대 교수 국어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