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코스트너가 정통 서부극으로 돌아와 제작 감독 주연으로 승부수를 띄운 영화 ‘오픈 레인지’. 사진 제공 영화랑
《정통 서부극 ‘오픈 레인지’와 코믹 웨스턴 ‘황야의 마니투’가 이번 주 나란히 개봉한다. 미국의 케빈 코스트너와 독일의 미하엘 헤르비그가 각각 제작 주연 감독을 맡은, 원맨쇼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색깔이 다른 만큼 취향에 따라 골라 볼 수 있다.》
▼‘오픈 레인지’▼
서부영화 ‘오픈 레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짧은 질문이 있다면 그건 바로 ‘왜(Why)’일 것이다. 왜,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대답은 영화의 제작 감독 주연을 겸한 케빈 코스트너에게 있다. 1990년 서부영화 ‘늑대와 춤을’의 제작 감독 주연으로 정상에 오른 그는 ‘JFK’ ‘보디가드’로 1990년대 초반 인기 정상에 올랐으나 이후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그런 그가 다시 서부극을 통해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정통 서부극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운명과 일대일로 승부해 화려한 과거를 재현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의 소산인지 모른다. 불행히도, 그는 다시 날 것 같지 않다.
개척시대 이전 미국 서부 대초원. 소 떼를 끌고 다니는 카우보이 보스(로버트 듀발)와 찰리(케빈 코스트너) 일행은 작은 마을 하몬빌에 도착한다. 악덕 농장주 벡스터와 타락한 보안관이 마을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 이곳에서 찰리의 동료는 벡스터 일당에게 희생되고, 아름다운 수(아네트 베닝)를 만나 첫눈에 반한 찰리는 벡스터 일당에게 숙명의 대결을 선포한다.
선과 악의 단순명료한 캐릭터 구분, 뻣뻣한 도덕률은 시대에 뒤처지다 못해 태만해 보인다. 악당들의 존재감은 찰리가 키우는 개(犬)보다 떨어져, 액션 활극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대결 에너지가 힘을 잃었다.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무게를 잡는 주인공 찰리 역시 ‘까놓고’ 보면 뚜렷한 자의식이랄 게 없다.
그나마 영화가 지금 이 시대의 한국 관객에게 호소하는 점이 있다면, 누구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삶에 대해 느끼는 동병상련 정도 아닐까. 27일 개봉.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황야의 마니투’▼
보물을 찾기 위해 요절복통 모험을 펼치는 백인 총잡이 레인저(왼쪽)와 아파치 인디언 아바하치. 사진 제공 백두대간
‘황야의 마니투’는 기발하고 파격적인 서부영화다.
서울 시네큐브에서 개봉되는 이 영화가 서부영화의 기존 룰을 따르는 것은 거친 황야를 배경으로 인디언과 고독한 총잡이, 무법자가 나온다는 점, 여기까지다. 이것만 빼고는 흔히 생각하는 서부영화의 모든 공식을 과감하게 비틀어 포복절도, 황당무계, 예측불가, 국적불명의 희한한 웨스턴 코미디가 탄생했다.
이런 영화를 진지하기로 소문난 독일인들이 만들고, 또 2001년 독일 개봉 당시 1200만 관객을 기록하는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각본 제작 감독을 맡은 미하엘 헤르비그는 1인 2역으로 쌍둥이 형제 역을 소화해 ‘다재다능’이란 말을 실감나게 한다.
스페인 남부에서 촬영한 이 영화의 시간, 공간적 배경은 19세기 말 미국 서부. 하지만 애당초 리얼리티나 시대적 상황은 철저히 무시된다. 아파치의 마지막 추장 아바하치(미하엘 헤르비그)와 백인 총잡이 레인저는 의형제 사이. ‘부족 중흥’을 위해 이들은 토끼부족의 황금을 빌려 술집을 차리려 하지만 악당에게 사기당해 돈을 홀랑 털린다. 빚을 갚기 위해 이들은 아바하치의 쌍둥이 형제인 위니터치와 옛 친구가 나눠 보관한 ‘마니투의 보물지도’를 찾는 모험의 여정을 떠난다.
꽃분홍색을 좋아하는 게이 인디언, 주인공보다 잘생기고 춤과 노래에 능한 악당 같은 기발한 캐릭터 설정, 황량한 서부에서 카우보이가 과속음주 단속에 걸리는 등 현대의 일상을 접목한 상황이 웃음을 유도한다.
영화가 끝났다고 성급히 좌석을 뜨면 안 된다. 제작자들의 이름이 다 나온 뒤에도 보너스 장면이 숨겨져 있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