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돌리고 창구도 따로서울 중구 을지로 2가에 있는 한국씨티은행 명동점의 영업 창구는 옛 한미은행과 옛 씨티은행 고객용으로 반씩 나뉘어 있다. 박영대 기자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하는 윤모(31·서울 구로구) 씨는 이달 초 집 근처 한국씨티은행에서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 하지만 인터넷뱅킹이 되지 않았다. 단순 오류라 생각하고 직장 부근의 다른 지점을 찾았는데 직원의 답변이 당황스러웠다.
“옛 한미은행 지점에서 가입하셨네요. 전산 통합이 안 돼서 옛 씨티은행 전산망에서는 확인이 안 됩니다.”
가입할 때 씨티은행 예금통장이 있음을 밝혔지만 ‘인터넷뱅킹 호환이 안 된다’는 설명은 없었다. 윤 씨는 옛 한미은행 지점에 들러 별도의 인터넷뱅킹을 신청해야 했다.
다음 달 1일이면 한미은행과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한국씨티은행으로 통합된 지 1년. 그러나 간판만 하나일 뿐 여전히 두 개의 은행이다.
갈라진 것은 전산망뿐이 아니다.
○ 한 지붕 두 가족…고객 불편은 외면
서울 중구 한국씨티은행 명동점에는 옛 한미은행과 씨티은행 전용 창구가 따로 있다. 그러나 다른 지점에서는 영업 분리에 대한 안내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국 225개 지점 가운데 원래 씨티은행이었던 곳은 15개뿐. 210개의 옛 한미은행 지점에서는 전산망이 달라 옛 씨티은행의 예금상품에 가입할 수 없다. 달라진 간판만 보고 찾은 많은 고객이 헛걸음을 한다.
10일로 예정됐던 전산 통합은 노사갈등으로 내년으로 미뤄졌다. 박선오 홍보부장은 “일정이 미뤄졌을 뿐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산망 통합 연기 후 한국씨티은행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2건의 금융정보 노출 사고가 있었다.
금융감독원 복합감독실 김인석 팀장은 “10일 새 전산시스템 가동 시험 중 조회 프로그램 오류로 고객 20여 명의 이름과 신용카드 사용 명세가 인터넷 사이트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14일에는 사은품 행사 당첨자의 주민등록번호가 뒷자리까지 공개됐다.
○ 노조 총파업 임박…갈등 해결 요원
옛 한미은행 노조의 진창근 홍보국장은 “핵심 요직을 옛 씨티은행 출신이 독점하는 등 차별이 심하다”며 “독립 경영이 노조의 목표”라고 말했다.
노조 안에서는 통합 1주년인 다음 달 1일 총파업에 돌입하자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회사 측은 처우 불평등 개선 등 노조의 요구사안은 ‘나중에 논의하자’는 방침이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24일 전국 부점장회의에서 “통합에 따른 과제는 임금 단체협상과 별도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파업으로 서비스 정지가 늘어날 전망이어서 고객의 불편은 더 커지게 됐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