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지역 학생이 비평준화지역 학생보다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정부의 학력 정보 독점 행태가 다시 한번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부가 전국 학생의 학력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자료 등을 공개하지 않고 소수의 연구자나 특정 정부연구기관에만 일부 자료를 제공해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발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준화지역이 공부 잘한다?=연세대 강상진(姜相鎭) 교수 등은 한국교육개발원의 의뢰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고교생의 학력평가 자료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28일 한국교육학회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했다.
강 교수가 일반계 126개 고교 학생 8588명의 2003학년도 연합학력고사 성적을 연구한 결과 평준화지역이 △언어는 120점 만점에 4.27점 △수리는 80점 만점에 인문계 10.28점, 자연계 7.91점 △외국어는 80점 만점에 4.37점이 더 높았다는 것.
▽상반된 연구결과도 존재=반면 성균관대 양정호(梁汀鎬) 교수팀이 최근 열린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생의 학교선택권이 보장되는 지역일수록 학업성취도가 높았다.
양 교수팀이 2005학년도 수능을 치른 전국 수험생 2000여 명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평준화지역의 무작위 추첨배정 고교보다 선(先)지원 후(後)추첨 고교와 비평준화지역 고교의 평균 성적이 높았던 것.
▽정부의 정보 독점이 문제=연구자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것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수능을 비롯한 전국 학생의 학력평가에 대한 원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평준화 효과 등에 관한 연구는 영향력이 크고 중대한 사안인 만큼 다수의 학자에 의해 다각도로 분석돼야 한다.
하지만 원자료가 한정되다 보니 연구 목적에 맞는 결과나 일반화하기 어려운 부정확한 결과가 나오기 일쑤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전체 데이터가 아닌 서울 강남의 평준화지역 고교와 읍면지역의 비평준화지역 고교의 성적만을 비교하면 실제와는 다른 왜곡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강 교수와 함께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 김기석(金基奭) 교수도 “(교육부가) 자료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연구에 한계가 있다”며 “전체 학교별 학력을 알아야 정확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정보 공개 공방 치열=교육부는 각종 학력평가와 관련한 국회 등의 자료 제출 요구를 계속 거부해 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해 9월 한나라당 이주호(李周浩) 의원이 평가원의 학력진단평가 결과를 토대로 지역 간, 학교 간 학력 격차 실태를 분석해 공개하자 자료 사용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법원이 소송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지만 평가원은 이에 불복해 서울고법에 항고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현재 ‘교육 관련 정보의 공개에 관한 법률’을 국회 교육위원회에 상정하고 다음 달 10일 공청회를 준비하고 있다.
홍익대 박경미(朴炅美·수학교육학) 교수는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도농 간, 강남북 간 학력 격차가 더욱 부풀려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인 신상 정보나 특정 학교 이름, 특정 지역명 등이 노출되지 않는다면 연구자에게 학력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