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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5-10-31 03:04:00

그림 박순철


“포악한 진나라가 망한 지도 3년, 아직도 세상이 이리 흉흉한 것은 모두가 그대와 나 두 사람 때문이다. 바라건대 한왕은 나의 도전을 받아들여 단둘이서 자웅을 가리고, 부질없는 전쟁으로 애꿎은 천하 뭇 백성들은 더 괴롭히지 말기로 하자. 어떠냐? 우리 둘만 저 아래로 내려가 당당하게 겨뤄 보지 않겠느냐?”

패왕이 그러면서 채찍을 들어 벼랑 아래 한 곳을 가리켰다. 초군(楚軍)과 한군(漢軍) 진채 사이 광무간(廣武澗)에는 변수((변,판)水)라는 개울이 흘렀는데, 변수 서쪽 한군 진채 발치에 제법 널찍해 말을 타고 싸울 만한 공터가 있었다. 패왕은 그곳에서 단병(短兵)으로 승부를 가리자는 뜻 같았다. 한왕이 흘깃 그곳을 내려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명색 한 나라의 군왕이 되어서도 어찌 이리 미련하고 어리석은가? 과인은 그대와 지혜를 다툴지언정 힘을 겨룰 수는 없다.”

그리고는 패왕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려 진채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왕의 그 같은 말에 분통이 터진 패왕은 길길이 뛰며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어댔으나 한번 사라진 한왕은 두 번 다시 진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제가 내려가서 한군에게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적장이라도 꾀어 내 그 목을 베어 대왕의 노여움을 다소나마 풀어드리겠습니다.”

패왕 곁에 있던 젊은 부장(副將) 하나가 긴 창을 끼고 나서며 그렇게 말했다. 먼 아우뻘 되는 항탁(項卓)이란 족중(族中) 젊은이였다.

“그래라. 네가 만약 한나라 장수의 목을 얻어 온다면 너를 장군으로 삼고 3000호(戶)를 내리겠다!”

패왕이 그런 말로 항탁을 격려해 내려 보냈다. 기세가 오른 항탁이 말을 타고 벼랑길을 돌아 광무간으로 내려갔다. 오래잖아 광무간 바닥에 이른 항탁은 거침없이 변수를 건넌 뒤 한나라 진채 앞에 있는 공터로 들어섰다.

“한나라 장수들은 듣거라. 너희 임금이 겁이 많아 감히 우리 대왕의 도전을 받지 못하니 세상에 이보다 더 부끄럽고 욕된 일이 있느냐? 예부터 이르기를, 임금이 욕되면 신하는 목숨을 바쳐 그 욕됨을 씻어야 한다고 들었다. 누가 나와서 내 창을 받아 저 겁 많은 임금의 욕됨을 씻어 보겠느냐?”

항탁이 자못 우렁찬 목소리로 가까운 벼랑 중턱에 얽은 한군 진채의 목책 진문(陣門)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 위세에 질렸는지 한군 진채는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항탁이 더욱 기세를 뽐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에 이리도 사람이 없느냐? 단 하나라도 부끄러움을 아는 자가 있거든 어서 나와 내 창을 받아 보아라!”

그래도 한나라 진채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더욱 간이 커진 항탁이 말을 몰아 한나라 진문 아래를 오락가락하며 한나라 장수들의 부아를 질러댔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더니, 또한 그 임금에 그 신하로구나. 우리 서초(西楚)에 맞서 명색 천하를 다툰다는 한나라에 이리도 밸 있는 장수가 없단 말이냐? 도대체 네놈들이 들고 있는 창칼은 젓가락이냐? 부지깽이냐?”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