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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조영선]日, 한센인 차별 모자라 보상도 차별하나

입력 | 2005-11-01 03:00:00


비(非)한센인에게 한센인(나환자)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한센인은 함께 하늘을 보며 호흡할 수 없는 천형의 피고인일 뿐이었다. 한센병이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며 전염성이 간염보다 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1950년대에 의학적으로 밝혀졌다. 간염을 앓았던 것처럼 단지 과거 한센병에 걸렸던 사람에 불과함에도 이들은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채 평생 천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센병이 이처럼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특히 일제의 강제 격리 정책에서 비롯된다. 일본은 1907년 이른바 ‘나예방법’을 통해 자국 한센인을 요양소에 강제로 격리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한센인도 소록도에 강제로 격리됐다. 일제가 세운 소록도병원에서도 일본의 한센병 요양소와 다를 바 없이 강제 수용, 강제 노동, 징계 구금 등의 인권 유린이 행해졌다. 또한 각종 토목 사업과 화물 운송, 벽돌과 가마니 생산 등에 한센인들은 자신의 몇 개 남지 않은 손가락마저 바쳐야 했다. 특히 결혼을 조건으로, 때로는 징계 수단으로 종족 보전 본능마저 단종(남성 불임시술)이나 낙태를 통해 부인 당했다.

일본 구마모토(熊本)지방법원은 2001년 5월 판결을 통해 1907년부터 1996년까지 90여 년 동안 일본 정부가 자국 한센인에게 실시한 강제 격리 정책이 다대한 인권 침해로서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이는 무지와 편견에 대한 반성으로 평등과 인권에 관한 보편적 가치를 확인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인권단체 등의 요구에 따라 항소를 포기했고, 한센병 보상 특별법을 통해 적절한 보상과 명예회복 조치를 취하게 됐다. 후생노동성이 자국 한센인에 대한 인권 실태 조사를 위해 설치한 ‘한센병 문제 검증회의’는 올해 3월 최종보고서에서 일제가 자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에서도 인권침해를 한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일본 도쿄(東京)지법 민사 3부는 소록도에 강제 수용된 한국 한센인 1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보상금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원인이 당시 일본 정부의 격리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일본 국회에서의 보상법 심의 과정에 ‘외국 요양소 수용자도 보상 대상’이라는 논의와 인식이 없었으므로 이들에 대한 대응은 장래의 과제로 넘겨졌다는 기각 취지를 밝혔다.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소극적인 법 해석 논리로 보상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 보편적인 평등과 인권에 관한 가치에 비춰 볼 때 강제 격리 정책에 이은 ‘판결’에 의한 제2의 한센인 차별이다.

이는 같은 날 도쿄지법의 민사38부가 대만의 한센인 25명이 같은 취지로 낸 소송에 대해 원고 측의 청구를 받아들인 판결에서도 확인된다. 대만사건 담당 재판부는 “외지 수용시설 환자에겐 보상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따로 없으므로 그들을 보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평등취급의 원칙상 바람직하지 않다”며 “보상법 취지는 부당한 격리 정책으로 장기간 고통을 받은 피해자들을 폭넓게 구제하는 것인 만큼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해 보상을 거부한 일본 정부의 조치는 위법”이라고 밝혔다.

대만 판결과 상이한 이번 소록도 판결은 오랜 세월 차별과 편견 속에서 묵묵히 절망과 체념의 한숨을 쉬어 온 많은 한국 한센인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절망의 쓴맛을 되씹게 했다. 오죽했으면 일본 언론들마저 “엇갈린 판결이 나온 것은 보상법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법률 해석에 집착하지 말고 전면 구제에 나서라”고 촉구했겠는가.

어떻든 시간이 없다. 소송을 낸 한국 한센인들의 평균 연령이 81.6세에 이른다. 지루한 법정 다툼을 벌일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한센인들의 마지막 소망은 그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게 아니라 설령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한센인의 굴레에서 벗어나 단 하루라도 ‘인간’의 이름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경제 대국 일본의 마지막 양심을 믿어 보고 싶다.

조영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