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를 앓고 있지만 3년간 연습 끝에 독창 무대에 서게 된 문경화 양(오른쪽)과 지휘자의 꿈을 이루게 된 이수훈 군이 31일 경기 고양시 홀트일산복지타운 강당 옆 단풍나무 아래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고양=전영한 기자
“도산이에(동산 위에) 오아서서(올라서서) 파라아느을(파란 하늘)….”
어색한 발음에 틀리기 일쑤인 음정이지만 수많은 청중을 앞에 놓고 노래를 부르게 돼 꿈만 같다.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경기 고양시 홀트일산복지타운의 혼성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단원 문경화(17) 양. 정신지체 1급이면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그녀가 3년 동안 노래 한 곡을 외워 15일 오후 7시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독창을 한다. 이 합창단의 정기 연주회 자리에서다. 곡목은 ‘하늘나라 동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습능력이 낮은 문 양이 노래 한 곡을 외운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두툼한 책 한 권을 외우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홀트 기획행정과 박꽃송이(30·여) 사회복지사는 “거친 음색이지만 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들을 때마다 감동한다”고 전했다.
1999년 의사소통도 힘든 30여 명의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이 합창단은 그동안 200여 차례 국내외 공연을 했다.
이 합창단의 올해 공연에는 역시 정신지체 1급이면서 다운증후군을 앓는 이수훈(10) 군의 특별한 무대도 마련됐다. 이 군은 2년 전 합창단에 들자마자 지휘자로부터 지휘봉을 빼앗아 혼자 단원을 지휘하는 몸짓을 취하곤 했다.
지휘자 박제응(41) 씨는 연습이 마무리될 즈음 한두 곡씩 이 군에게 지휘봉을 넘겨보기도 했다.
단원들은 어설픈 지휘자를 보면서도 노래는 곧잘 불러 이 군을 기쁘게 했다. ‘부지휘자’라는 별명도 생겼다.
이 군은 15일 무대에서 박 지휘자를 대신해 ‘사랑은 영원하리’라는 곡을 직접 지휘한다.
31일 연습장에서 만난 이 군은 쉬는 시간에도 독창을 할 예정인 문 양을 앞에 두고 계속 지휘 연습에 몰두했다.
합창 단원의 막내 이강영(8) 양은 정신지체 1급에 뇌병변, 기관지절제 수술까지 받았지만 3년 전 목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수술을 해 조금씩 소리를 되찾는 중이다.
이 양은 노래 덕분인지 교내 동시 암송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엄마’라는 제목을 포함해 “엄마, 나 똑같다. 코 땡 눈 땡 입 딩동댕”의 단 두 줄뿐인 동시. 이 양에게는 한없이 길었을 이 시를 며칠에 걸쳐 모두 외워 지도 교사들을 감격스럽게 했다.
이 양은 이번 공연이 끝나고 내년 초가 되면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된다. 입단 전 합창단 언니 오빠들이 해외 공연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꼭 같이 가겠다’고 했던 다짐을 지키지 못하게 됐지만 새 가정을 찾게 돼 모두 축하해 주고 있다.
홀트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노래를 통해 한계를 이겨내는 모습은 늘 감동을 준다”며 “이번 공연에는 특별한 사연도 많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방송인 정은아 김승현 씨가 사회를 맡고 정준호, 조형기, 송채환 씨 등이 특별출연할 예정이다. 전석 1만 원. 031-914-6631∼7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