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파의 약진.’
31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단행한 3차 개각의 특징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2001년 4월 고이즈미 정권 출범 이후 근근이 유지됐던 ‘매파’와 ‘비둘기파’의 세력 균형이 일거에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각료 17명(겸임 포함 21석) 중 수평 이동을 포함해 14명이 새로 충원된 대규모 개각이지만 핵심 포스트는 우익 성향의 인물로 채워졌다. 앞으로 아시아 외교의 강경기조를 짐작하게 하는 인선이다.
이에 야당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인물로만 채워졌다”며 ‘네오콘 내각’이라고 꼬집었다. 일본 정계의 한 소식통도 “‘예스맨’에 대한 편애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인선”이라고 깎아내렸다.
▽‘충성 발언’이 좌우했다=이른바 ‘포스트 고이즈미’ 후보 4명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이 입각에 실패해 경쟁 대열에서 사실상 탈락했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은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온건 성향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재무상도 내각에 잔류해 차기를 노릴 수 있게 됐다.
10월 17일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행한 직후 후쿠다 전 장관을 제외한 세 사람은 ‘참배는 잘한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충성 발언과 이번 개각 결과를 연결짓는 분석이 일본 정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개각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아베 관방장관(부처 간의 조정 및 정부 대변인 역할까지 맡는 실세 각료)이라는 점에 일본 언론들의 평가가 일치한다. ‘킹 메이커’를 자임한 고이즈미 총리가 모리(森)파 후배이자 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 부장관과 자민당 간사장을 맡으며 자신을 보좌해 온 아베 관방장관을 ‘후임 0순위’로 여기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 정권의 최대 약점이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악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역사 관련 망언으로 한국, 중국 정부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을 외상으로 발탁한 것은 일본 언론들도 의아해하는 대목. 차기 경쟁을 공정하게 진행하겠다는 의지로 보이지만 ‘외교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이 자민당 내에도 있다.
▽내정 개혁은 지속한다=고이즈미 총리가 기존의 미국 중시 외교를 계속하면서 아시아 국가와는 마찰을 감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과의 정상 외교는 어차피 자신의 임기 중엔 물 건너간 만큼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북한과의 관계는 고이즈미 총리 본인이 임기 중 북-일 수교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어 의외의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이즈미 특유의 ‘깜짝 인사’는 이번에도 재현됐다. 초선으로 제네바 군축회의 일본 대표부 대사를 지낸 이노구치 구니코(猪口邦子·여) 의원을 소자화(少子化·저출산) 및 남녀공동참여 담당상으로 발탁해 서열 파괴를 다시 선보였다.
한편 집권 자민당 주요 당직에는 다케베 쓰토무(武部勤) 간사장과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총무회장을 유임시켰다. 반대파의 반발을 누르고 총선 정국을 유리하게 이끈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 아소 다로 외상
아소 다로 외상은 역사와 관련한 돌출 발언을 자주 해 일본 언론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인물이다.
자민당 정조회장이던 2003년 5월엔 일제가 강제했던 창씨개명에 대해 “조선인들이 ‘(일본의) 성씨를 달라’고 한 것이 시발이었다”며 “일본은 그때 의무교육을 실시했고 대학도 세워 주는 등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총리가 야스쿠니에 가지 않는다고 중국과의 관계가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도 야스쿠니신사에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배해 왔다.
부친은 일제 때 규슈(九州)에서 1만여 명의 조선인 징용자를 끌고 가 노역시킨 아소탄광을 경영했으며 본인도 한때 이 탄광의 사장을 지냈다. 일본 현대정치의 뿌리로 꼽히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외손자이자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의 사위다.
■ 아베 신조 관방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일본 정계에서 ‘집권 자민당의 황태자’로 불린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호칭이 붙었다.
고이즈미 내각 출범 당시 관방 부장관이던 그는 2003년 중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당의 2인자’인 간사장으로 발탁됐다. 서열과 연륜을 중시하는 자민당 풍토에서 당시 중의원 4선에 불과한 아베 간사장의 등장은 정계 질서를 뒤흔드는 혁명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참의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간사장 대리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두터운 신임과 소속 파벌인 모리파의 후원에 힘입어 당 개혁을 주도하면서 영향력 유지에 성공했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외조부이고 1980년대에 정계 실력자로 활약했던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이 부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