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국의 탐험가 지존 5]세계 최초 산악그랜드슬램 박영석

입력 | 2005-11-01 03:01:00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박영석 씨. 세계 최초로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그는 내년 베링 해협 횡단에 도전한다. 사진은 2003년 11월 남극탐험 때의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고산 등반과 탐험만큼 세계적으로 ‘한국의 힘’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분야도 드물다.

한국은 1962년에야 히말라야 첫 원정에 나선 세계 산악계의 늦깎이지만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전 세계 완등자 13명 중 3명을 배출한 완등자 최다 보유국.

국정홍보처의 국정브리핑 내용에 따르면 매주 산을 찾는 국민은 200만 명, 전체 등산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또한 매년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전문 등반대’도 30여 개에 이른다.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이 낳은 대표적 산악인 5명(박영석 엄홍길 오은선 한왕용 허영호)이 말하는 산과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름 가나다순으로 게재).》

박영석(42·골드윈코리아 이사, 동국대 산악부 OB) 씨는 올해 5월 1일 북극점에 우뚝 섰다. 세계 최초로 산악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에베레스트와 남북극점 등 지구 3극점 도달을 모두 이루는 것)을 달성한 것. 이는 서구인들이 써 온 세계 산악·탐험사에 동양인이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모든 것’을 이뤘지만 그는 그랜드슬램 달성기념 풋프린트(foot print) 아래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세계지도를 펴 봐요, 가 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막 뛰어요.”

● 베링 해협 횡단 도전

그는 내년 2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베링 해협을 도보로 횡단할 예정이다. 5만 년 전 몽골인종이 건너가 이누이트(에스키모)와 아메리카 인디언이 됐다는 바로 그 루트다. 베링 해협의 최단거리는 85km. 하지만 해류와 빙하의 움직임도 소용돌이치듯 해 300km 이상을 우회해야 한다. 1998년 러시아팀이 단 한번 성공했다. 이번 베링 해협 횡단에 참가하는 김영선(42·모스크바 거주) 대원에게 ‘무모하니 포기하라’고 만류하던 러시아 탐험대행사는 ‘이번 도전은 박영석 씨가 주도하는 것이다’라고 알리자 “그렇다면 빨리 계약을 하자”고 나섰다. 그의 세계 탐험계에서의 위상은 이 정도다.

● 결혼 예물 팔아 히말라야 원정

그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생활은 어떻게 꾸려 나가느냐’는 것. 지금은 아웃도어업체인 골드윈코리아 이사로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아내 홍경희(42) 씨가 지난해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개업한 한식당도 성업 중으로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대기업 후원으로 해외 원정에 나서는 요즘도 그는 후배들에게 ‘짠돌이’ 소리를 들어가며 경비를 줄여 보려고 애를 쓴다. “배부른 등반은 이미 실패한 것”이란 철학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

그의 히말라야 첫 도전은 1989년 봄 네팔 히말라야의 랑시샤리2봉(6427m). 돈이 떨어져 네팔 카트만두에서 시계와 등산복을 팔아 돌아왔다. 그해 겨울엔 예정됐던 결혼도 미루고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 랑탕리(7205m)를 등정하고 결혼 예물 살 돈으로 귀국 비행기 표를 끊었다.

● 긴장의 끈 놓는 순간 곧 죽음

히말라야 원정 31번에 18번 성공, 극지방 3번 도전에 2번 성공. 결국 그는 14번을 실패한 경험이 있다. 1991년 에베레스트 첫 도전에서 100m를 추락해 안면 함몰 부상을 겪었던 그는 1995년 다울라기리(8167m) 등반 때도 크레바스에 빠졌으나 배낭이 중간에 걸려 목숨을 구했다. 수도 없이 위험한 순간을 맞이했던 박영석 씨. 그는 “자연은 항상 무섭지만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다. 자만과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