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개막해 6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간 2005∼2006 프로농구. 본보는 ‘겨울 프로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프로농구의 재미난 화제와 뒷이야기를 풀어낼 농구 칼럼 ‘김종석 기자의 퀵 어시스트’를 오늘부터 매주 게재합니다.》
KCC 허재(40) 감독에게 10월의 마지막 날 전화를 했더니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매니저였다. “선수들과 미팅을 하고 계십니다.”
1시간 정도 지나 허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 못 받았네요….”
허 감독은 현역 시절 전화 통화가 어렵기로 유명했다. 휴대전화는 먹통이기 일쑤. ‘콜백’이란 말은 아예 모르는 듯했다.
그런 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부터는 달라졌다. “선수 때야 나 하나면 그만이잖아요. 감독 자리는 한 조직을 대표하는 거 아닙니까.”
감독 데뷔 무대에 오른 허 감독이 이끄는 KCC는 3승 1패로 2위를 달리고 있다. 주위의 뜨거운 시선 속에서 첫발을 잘 뗀 것이다.
‘농구 9단’ ‘농구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듣던 그도 선수 말년에는 체력이 달려 벤치를 지킬 때가 많았다. 당시 그는 후보의 애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쉬다가 출전하면 잘 되는 줄 알았어요. 후보들도 많이 꾸짖었고. 근데 내가 그 입장이 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땀이 식어 슛도 잘 안 나가고….”
그래서 그는 식스맨의 기를 살려주고 기회를 주는 데 애쓴다. 그러다 보니 팀 분위기도 신바람이 난다. 무명이던 손준영은 SK전에서 22점을 터뜨리며 승리를 주도했다.
허 감독 주위에는 좋은 조언자도 많다.
특히 아버지 허준(76) 씨의 극진한 아들 사랑은 유별날 정도. 당초 허 감독은 KCC 감독으로 영입된 뒤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미국에 두고 오려 했다. 아이들 공부를 위해 ‘기러기 아빠’를 자원한 것. 하지만 허 씨는 “무슨 소리냐”며 전부 불러들였다. 허 감독이 혼자 힘들까봐 염려했던 것.
허 감독의 대학 은사인 정봉섭(62) 중앙대 체육부장도 틈나는 대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스타의식 버리고 겸손해라”, “말 한마디도 신경 써라” 등 감독의 자세를 가르쳤다.
이런 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는 듯 허 감독은 올 시즌 들어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 숙소에 머물고 있으며 지난 주말에도 선수들에게 외박을 하게 한 뒤 홀로 경기 분석에 매달렸다.
앞으로 허 감독은 정규리그에서만 50경기를 더 해야 하는 험한 길을 가야 한다. 매일 결승을 치르는 기분이라는 ‘초보감독’에겐 피 말리는 나날이 되겠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흥미롭기만 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