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도쿄에서 열린 도쿄필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한일 음악인 3인. 바이올리니스트 쇼지 사야카와 첼리스트 고봉인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왼쪽부터)의 지휘로 유려한 협연을 선보였다. 사진은 리허설 장면. 사진 제공 CMI
다섯 번의 커튼콜 끝에 지휘자도, 연주자들도 모두 떠난 텅 빈 무대. 그래도 객석의 절반 가까이 남은 관객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박자를 맞춰 계속 치는 박수 소리에 결국 지휘자 정명훈(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특별예술고문)은 옷을 갈아입다 말고 다시 무대로 나왔다. 관객들은 무대로 몰려가 정 씨에게 악수를 청했다.
지난달 31일 밤 일본 도쿄 신주쿠 도쿄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열린 도쿄필 연주회. 이날 공연은 적어도 음악에서만큼은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뤄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한일 양국 천재 연주자 한 무대에
이날 연주에서 관객들의 시선은 단연 협연자인 한일 양국의 두 젊은 음악가 첼리스트 고봉인(20), 바이올리니스트 쇼지 사야카(22)에게 맞춰졌다. 두 사람이 도쿄필과 협연한 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바이올린과 첼로의 솔리스트로서의 기량은 물론 실내악 같은 화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특히 두 사람은 같은 선율을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3악장에서 경쾌한 활 동작을 주고받아 박수갈채를 받았다.
쇼지 사야카는 16세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경연대회에서 최연소로 대상을 수상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쇼지 사야카는 고봉인에 대해 “처음엔 연주법이나 곡에 대한 해석이 달랐지만, 둘만의 연습 끝에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며 “그의 연주는 정말 따뜻하고 환상적이다”고 말했다.
○ 공부도, 음악도 안 놓치는 하버드대생 첼리스트
첼리스트 고봉인. 동아일보 자료 사진
첼리스트 정명화는 “한국인은 슬프거나 열정적인 연주는 잘한다. 그러나 고봉인은 한국 연주자에게 부족한 유머까지 갖추고 있다”고 고봉인을 높이 평한 바 있다.
고봉인은 이 말에 대해 “즐기면서 연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호문화재단이 후원한 음악 영재 출신인 그는 음악과 공부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다가 결국 아버지인 고규영(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의 뒤를 이어 생명과학자가 되기 위해 하버드를 택했다. 그러나 ‘하버드-뉴잉글랜드 음악원’ 조인트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하버드대 선배인 첼리스트 요요마는 어렸을 때부터 존경과 동기부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버드를 선택한 것도 요요마의 영향이 컸죠. 그를 통해 하버드대가 음악하는 사람을 키워 주고 지원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고봉인은 최근 요요마가 쓰던 ‘몬타니아’ 복제품을 선물 받았다. 금호문화재단에서 빌린 첼로를 8년간 사용해 왔으나 지난여름 반납했던 것.
“대학 졸업 후 의대에 진학해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싶다”는 고봉인은 매일 밤 4, 5시간씩 첼로 연습도 거르지 않는다. 콘서트가 끝난 후 참석한 축하 파티에서도 고봉인은 “교양과목 교재인 ‘미국 헌법의 역사’를 읽어야 한다”며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 7일부터 국내서도 공연
정명훈과 두 젊은 연주자가 펼치는 도쿄 필의 국내 공연은 7일 부산 문화회관, 9일 제주도 문예회관, 11일 경기 과천 시민회관, 12일 세종문화회관, 13일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혁명)이 연주된다. 4만∼12만 원. 02-518-7343
도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