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세금 더 거둘 ‘근거’로 “우리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6위로 낮은 편”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10월부터다. 9월 관계장관 간담회에서 내년 예산을 더 달라는 각 부처의 요구에 재경부는 “세(稅) 부담이 계속 무거워졌고 더 높이기 어렵다”고 했다. 국정홍보처가 일부 신문을 공격하기 위해 썼던 ‘기억상실증’이라는 단어를 재경부에 돌려주어도 될지, 국정홍보처에 묻고 싶다.
9월에 재경부는 사회안전망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율을 올리자는 관계 부처의 요구를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올해 세율을 내렸다”며 일축했다. 한 달 뒤 재경부는 “법인·소득세율 인하의 투자 및 소비 진작 효과가 미미하다”고 말을 바꿨다. 세율 인하의 중장기 효과와 투자 부진의 다른 요인을 모른 척하면서 세율 인하 논리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10월 초 한나라당이 감세(減稅)를 주장하자 한덕수 경제부총리,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 김용민 세제실장은 “감세는 고소득층에만 혜택을 준다”고 주장했다. 어제도 감세론을 반박했다. 그렇다면 재경부와 기획예산처가 9월에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하는 것은 각국의 추세”라고 한 말은 실언(失言)이었나. 성장잠재력 제고도 고소득층만을 위한 것인가.
9월 말 이해찬 국무총리는 자신이 중시하는 복지사업 재원이 확보되지 않자 “부처마다 5% 이상 낭비 요인이 없다고 생각하느냐”며 화를 냈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이 221조 원이니, 낭비 요인을 5%씩만 잡더라도 11조 원을 넘는다. 사회안전망 재원을 계획대로 늘리고도 감세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 총리는 낭비 요인만 지적했을 뿐, 무거운 세 부담에 대한 국민의 불평은 못 들은 척한다.
관료들의 말 바꾸기는 ‘정책 뒤집기’와 직결되기 때문에 정책의 난맥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또한 정권 코드에 정책을 꿰맞추기 위해 그때그때 편리한 논리와 통계, 외국의 사례 등을 작위적으로 동원하는 관료들에게 국민은 한없이 속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