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풍경을 지옥도처럼 그려낸 영화 ‘시티 오브 갓’.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역설의 힘이다. 사진 제공 프리비젼
이미지에도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4일 국내 개봉되는 영화 ‘시티 오브 갓’은 어떤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곱씹게끔 만든다. 세상은 숨겨진 지옥이고 인간은 근원적으로 악마의 후예가 아닐까 라는.
사실, 영화 속에서 살육의 향연을 벌이는 인간 군상보다 더 지독한 건 이 영화 자체 같다. 모골이 송연한 지옥도를 보여 주면서도 문득 살인을 흥미진진하게 소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얄궂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빈민가는 ‘신의 도시(City of God)’라 불린다. 정부는 빈민들을 이곳에 집단으로 몰아넣고 격리시켰다. 1960년대, 낭만적인 깡패 ‘텐더 트리오’가 이곳을 주름잡지만 이들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1970년대, 또 다른 깡패 제페게노가 등장하면서 ‘신의 도시’는 살인의 광기로 타오른다.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무기를 사들인 사람들은 끝 모를 총격전을 이어간다. 사진기자가 꿈이었던 부스카페는 이런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성장한다.
아내를 생매장한다. 유치원에나 다닐 법한 꼬마들이 마약에 절어 지낸다. 10대만 되면 권총을 휴대전화인 양 들고 다닌다. 16세면 마약 왕이 되어 도시를 주름잡는다. 그리고 20세까지 ‘장수’하면 나보다 어린 누군가에 의해 하루아침에 시체로 변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들은 제대로 된 이유를 찾기 힘든 도륙의 전장에 나가기 직전, 주기도문을 외우며 하나님을 찾는다. 이런 ‘신의 도시’에 물론 신은 없다.
‘시티 오브 갓’의 원작자인 파울루 린스, 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레스, 극중 ‘마네’ 역을 맡은 세우 호르헤(왼쪽부터).
제목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강력한 역설 하나가 영화를 관통한다. 이는 끔찍한 메시지가 낭만적인 화법과 천연덕스럽게 몸을 섞는 순간 탄생하는 역설이다. 이 역설이 핵폭발하며 뿜어내는 에너지는 ‘시티 오브 갓’에 원시적인 동물성을 영혼처럼 불어넣는다. 이 영화는 ‘갱스터’라는 장르적 문법에 영악하게 안주하면서 결과적으론 장르영화가 갖는 메시지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뭐랄까. 생기 넘치고 발랄한 목소리로,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욕설을 뱉어낼 때 느껴지는 부조리랄까. 영화는 이런 독특한 심리경험을 하게 만든다. 카벨레라, 알리카치, 마헤코, 제페게노, 베네…. ‘신의 도시’를 주름잡는 이름들은 무수히 명멸하지만, 이들 이름은 무척 중요한 동시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위인열전에라도 나오듯 의기양양 등장하고, 영화는 마약 살인 강간 약탈로 점철되는 이들의 악마 같은 삶을 낭만적인 무용담인 양 늘어놓는다. 그들의 끔찍한 범죄 행각은 무슨 첨단 라이프 스타일이라도 되는 듯, 속도감 있는 편집과 감각적인 카메라 워크, 그리고 몸을 흔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탄력적인 라틴 리듬 위에 뚱딴지처럼 올라탄다. ‘신의 도시’를 녹일 듯 내리쬐는 태양광처럼, 캐릭터들이 강렬하면 강렬해질수록 그들의 존재는 반대로 무의미해져간다. 현란한 스타일을 극한까지 몰고갈수록 세상은 끔찍하고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시티 오브 갓’에서 실제로 성장한 파울루 린스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옮겨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소설 내용은 다시 브라질 출신의 재능 있는 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레스에 의해 다시 태어나 삼바 같은 탄력과 생명력을 얻었다. 감독은 실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실제 빈민가 출신 아마추어 배우들을 기용했다. 외국영화임에도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이변을 낳았다.
만약에 이토록 매혹적인 지옥이 실재한다면, 더 인간에게 남은 기도가 있을까. 이 영화를 보는 당신, 한 번 웃을 때마다 한 번 절망하리라. 18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