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양학회 백희영 회장은 3일 인터뷰를 통해 43년 만에 개정한 영양섭취기준(DRIs)이 다소 엄격한 내용이지만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3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한국영양학회 심포지엄에서 43년 만에 개정한 영양섭취기준(DRIs)을 공식 발표한 이 학회 백희영(白喜英·55·여·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회장은 “국민에게 선물을 드린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영양학회는 2002년부터 영양학자 80여 명이 참여한 연구를 통해 18개 주요 영양소의 ‘하루 상한(上限)섭취량’과 이를 포함한 44개 영양소의 ‘적정 섭취량’을 제시한 DRIs를 발표했다. 1962년 제정된 ‘영양섭취량’은 영양 섭취가 부족한 국민을 위해 섭취 하한선을 제시했지만, 이번 발표는 영양 과다인 국민이 넘지 말아야 할 상한선을 명시한 것이 특징이다.》
백 회장은 “지난달 24일 DRIs를 제정했다는 동아일보 기사가 나간 이후 한동안 학회 사무국은 문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면서 “국민의 영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영양학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운을 뗐다.
일반인에게 영양소별로 상한, 하한 기준을 정해 줄 필요까지 있을까. DRIs 책자에는 44개 영양소의 상한섭취량 영양권장량 평균필요량 충분섭취량 등 쉽게 이해하기 힘든 자세한 기준이 나와 있다.
“과거에는 집에서 나물과 생선을 요리해서 식사를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외식, 급식 등 가정 밖에서 식사가 이뤄지죠. 또 건강기능보조제 등 영양 섭취 통로도 다양해졌습니다. 이제 사회가 영양 섭취를 관리해야 합니다.”
문의 전화 가운데는 DRIs가 정한 식단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힘들 정도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특히 하루에 김치를 한 끼만 먹고 살 수 있느냐는 항의가 많았다.
“식단을 학회가 정한 기준대로 관리하기란 당장 쉽지 않을 겁니다. 염분이 많은 걸 알지만 한국인이 김치나 젓갈을 먹지 않을 순 없죠.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처럼 염분을 많이 섭취하면 성인병 발병률이 계속 올라갈 것이란 점이죠.”
그는 1970년대 이후 적극적인 저지방 제품 개발과 홍보로 심장병 발병률을 크게 낮춘 미국의 예를 들었다.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염분 섭취량을 줄이면서 한국인의 구미를 당기는 김치를 개발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올해 2월부터 학회장을 맡아 DRIs 마무리 작업을 주도한 백 회장은 “DRIs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영양연구·교육 수준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털어놓았다.
백 회장은 정부의 영양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 국립영양연구소가 한 곳도 없다는 점을 들었다. 외국 정부의 영양학에 대한 지원을 언급할 때 그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미국 정부는 DRIs를 제정하는 데 700만 달러를 지원했어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운영비를 약간 지원했지만 한국영양학회가 연구비를 자체 충당했습니다. 동위원소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기존 자료를 토대로 만든 한국의 DRIs는 외국 것에 비해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현재 미국은 농무부 산하로 전국 8곳에 국립영양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1920년, 인도는 1918년 국립영양연구원을 개설했다. 한국은 보건복지부가 영양 문제를 질병 예방책의 일환으로 다루고 있을 뿐 영양소 자체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 논란이 된 기생충 알 김치에 대해 그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질타했다.
“정부는 납 김치, 말라카이트그린 생선 등과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뭔가를 밝혀냈다는 식으로 자랑스럽게 발표하면서 평소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대책은 없어요. 국민도 ‘이제 김치를 담가 먹겠다’는 단시안적 해법 대신 영양을 어떻게 관리할까라는 자세가 필요하죠.”
백 회장은 “영양 섭취 교육을 할 수 있는 영양컨설턴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 “선진국에선 누구나 쉽게 영양컨설턴트를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영양 섭취 방식을 상담한다”고 말했다. 환자는 병원에 있을 때는 병원이 식사 조절을 하고 퇴원한 뒤에는 컨설턴트를 통해 영양 섭취를 조절한다는 것.
백 회장은 영양학을 ‘인간을 사랑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부자라고 하루에 열 끼를 먹을 수 없고 가난하다고 안 먹고 살 수는 없다”면서 “이 때문에 국민과 정부가 영양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