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같은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자 한왕용 씨. 그는 대기록을 세운 뒤 히말라야 고산의 쓰레기를 치우는 ‘클린 마운틴’ 운동을 묵묵히 전개하고 있다. 사진은 2003년 7월 14좌 완등의 마지막 봉우리인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에서의 모습. 사진 제공 에델바이스아웃도어
“죽음의 지뢰밭에서 막 돌아왔어요. 당분간은 가족들과 함께 살아 있다는 것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2003년 7월 28일 인천공항 입국장. 파키스탄 가셰르브룸 제2봉(해발 8035m)과 브로드피크(8047m) 정상에 잇따라 올라 국내 3번째, 세계 11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한왕용(39·에델바이스아웃도어 홍보부장) 씨. 당시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처럼 답했다.
해맑은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한 씨는 그보다 앞서 14좌를 완등한 박영석 씨와 엄홍길 씨에 비해 ‘대장’ 카리스마는 부족한 편이다. 대선배들과 함께 ‘넘버 2’로 활동을 많이 한 까닭이다. 14좌 중에서 박 씨와는 5개(1개는 한 씨 단독 등정), 엄 씨와는 3개(1개는 한 씨 단독 등정) 고봉 원정을 함께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 준 목숨을 건 희생정신은 가히 ‘넘버 1’.
2000년 7월 K2(8611m) 원정 때 한 씨는 등반 중 선배 유한규(50·대한산악연맹 산악스키위원장) 씨가 심한 고소 증세로 고통스러워하자 자신의 산소통을 넘겨주고 무산소로 등정했다. 이후 한 씨는 뇌혈관이 막히는 마비 증세로 4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때부터 말도 어눌해졌다.
“그렇게 괴로워하는데 제가 어떡해요? 후회는 없어요.”
그의 ‘산사나이 의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1995년 에베레스트(8850m) 등정 때는 뒤늦게 정상에 오른 고려대 원정대 대원이 내려오지 않자 해발 8700m에서 5시간여 동안 기다려 기진맥진한 그를 살려 내기도 했다.
히말라야를 ‘죽음의 지뢰밭’이라고 표현한 한 씨는 14좌 완등 이후에도 5차례나 더 히말라야에 다녀왔다. 등반 과정에서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클린 마운틴’ 운동에 나선 것.
다음 달 초에는 경기 의정부성모병원 김동욱 박사팀의 백혈병 환자들과 함께 안나푸르나(8091m)를 찾을 예정이다. 내년 5월에는 전 세계 14좌 완등자들을 초청해 에베레스트에서 다시 한번 ‘청소 등반’을 벌일 계획.
“또다시 집을 비우게 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그는 요즘 아침마다 간호사 일로 바쁜 아내를 대신해 두 아들에게 아침밥을 손수 떠먹이고 유치원을 보내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