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꺼림칙한 김치는 안 먹을 수 있어도 초중고교생이 학교에 안 갈 수는 없다. 또 체제를 뒤집으려는 교사한테 자식을 안 맡길 선택권이 학부모에겐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반대하는 17분짜리 동영상 수업자료를 지난달 공개했다가 비판이 커지자 욕설과 비속어가 많이 섞인 4분 20초 분량만 지난주에 삭제했다. 교사의 반미·반자본·반세계화 논리에 세뇌된 학생의 앞날과 이들이 짊어질 미래 한국이 장밋빛일지, 잿빛일지는 일단 접어 두자.
아무리 가치관이 뒤틀려도 스승이 제자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뜨리는 것이 전교조가 말하는 ‘참교육’의 으뜸 목표인 ‘인간화 교육’일 수는 없다. 자신의 아들딸에게도 이런 자료를 얼굴 들고 보여 줄 배짱이 있는가.
전교조는 “교원평가 강행이 교육을 황폐화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교원평가보다 투쟁을 선동하는 언어와 비속어가 청소년 심성(心性)을 더 황폐화시키지 않을지 먼저 걱정하는 게 정상이다. 내 아이에게 상스러운 말 가르치라고 힘겹게 등록금 내고 세금 내는 부모가 있는지 찾아보라.
교육인적자원부는 학부모 등 국민의 80%가 평가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혀왔다. 전교조 ‘참교육’의 두 번째 목표는 ‘교육의 민주화’다. 그렇다면 평가 거부는 누구를 위한 민주화인가. 전교조는 “평가제가 교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정당성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교원의 뜻이 정당성의 근거요, 정의(正義)라는 얘기다. 그러나 평가 반대야말로 절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해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전교조는 평가제 시범실시조차 막으려고 연가(年暇) 투쟁을 예고했다. 4년 전 성과급(成果給) 분쟁 때도, 지난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 때도 교실을 버리고 연가 투쟁을 벌인 그들이다. 지난해에는 대통령 탄핵 반대운동과 민주노동당 선거운동을 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깬 위헌이고 불법이다. 제자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서 전교조가 하겠다는 ‘올바른 교육개혁’의 실체는 무엇인가. 정권부터 교사까지 법을 우습게 아는데 공교육이 바로 서겠는가.
전교조 ‘참교육’의 또 다른 목표는 ‘민족교육’이다. 남북과 해외에 8000만 민족이 산다. 전교조는 2300만 북한 주민의 인권을 지켜 주자고 목소리를 높여 본 적이 있는가. 이들의 굶주림과 정치적 노예 상태에 눈감으면서 전교조가 애지중지하는 민족은 누구인가. ‘인권교육을 실천한다’는 참교육 강령은 ‘북한 제외’라는 단서라도 달고 있는가.
반(反)APEC 정상회의 수업에 대해 전교조 부산지부는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20개 주요 교역 상대국 정상을 초청해 국가이미지를 높이고 공동 이익을 찾아보겠다는데 “빈곤을 확대한다”고 선동하는 것이 균형 잡힌 행동인가.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왜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 주지 않는가.
노무현 정권은 한미동맹에 대한 회의(懷疑)를 키우고, 전교조는 경제와 안보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을 배격한다. 이제 미국이 더 싸늘해졌다. 보수그룹뿐 아니라 진보진영까지 ‘한국의 배신(背信)’을 공공연하게 성토한다. 이런 상황이 우리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고, 전교조가 강조하는 ‘민족’의 일부인 재미동포들의 삶에 보탬이 되겠는가.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반미와 미국의 혐한(嫌韓)을 지켜보면서 우리를 더욱 얕잡아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아예 남한을 ‘봉’으로 취급하고, 말부터 앞세운 ‘자주국방’의 계산서는 국민 앞에 쌓여 가고 있다. 전교조는 반미의 대가에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제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길 셈인가.
교육 선택권이 교사에게만 있고,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없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수요자가 불량 공급자를 퇴출시키는 건 시장원리에도 맞다. 그래서 전교조가 시장원리를 거부하고 노 정권이 이들을 감싼다면, 전교조가 싫은 국민은 전교조 비호 정당을 선거에서 떨어뜨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전교조 내부에도 진정한 ‘참교육’을 위해 고민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부터 국민이 등 돌린 시대착오적 정치 이념 운동에 제동을 걸고 나서야 한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