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어느새 눈이 기다려지고 겨울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요즘, 기나긴 겨울 동안 함께할 만한 좋은 책이 있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제격인 이 책은 꽤나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좋은 책이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 크나큰 전기를 마련해 주거나 교훈과 감동을 주는 것이 좋은 책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꼭 감동적인 책뿐만이 아니라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게 해서 지금 여기를 생각하게 하는 책들도 큰 가치가 있다.
‘한국생활사박물관’(전 12권)은 지금 여기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준다. 오랜 기간의 기획과 꼼꼼한 구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100만 년 생활사를 다뤘다는 점 외에도, 이 책의 더 큰 가치는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지난밤 동안에 죽어 있던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어딘가에서 한 생명이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도시는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수한 시간의 숨결들이 우리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류는 하나이며 그들의 삶도 하나라고 하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되뇌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잊고 지내던 우리의 과거를 하나씩 빛바랜 사진첩에서 꺼내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지금의 오늘 속에 어제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 미덕이다.
이 시리즈는 선사,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가야, 고려, 조선 그리고 현대로 나누어 마치 독자들이 실제 박물관 속으로 들어가 과거를 체험하는 듯 꾸며 놓았다. 생산과 생산 도구, 주거지와 형태, 의복, 풍습 등으로 갈래를 나누어 생활사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재미있는 상상화 한 장면 앞에 발길이 머물 듯 책의 어느 한쪽을 펼쳐도 역사적 상상에 뛰어들 수 있다. 그래서 평면적이고 지루한 역사책이 아니라 생생하고 역동적인 역사책이다.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책의 구성 역시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시대별, 주제별로 각각의 방을 만들어 내고 그 방 속에서 숨쉬는 우리 선조들의 생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2500여 점의 그림과 사진, 각계 전문가들의 흔적과 노고가 읽힌다.
예를 들어 제3권인 ‘고구려 생활관’을 펼쳐 보면 고구려 사람들의 역사를 웅장한 사진과 함께 보여 주는 ‘야외 전시’에 빠져들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사신(四神)을 따라 고구려의 흥망성쇠를 살피면서 환도산성, 광개토대왕릉비 유적을 다큐멘터리 보듯 따라가게 된다. 또 그들의 생활상을 성밖 마을 사람들(평민)과 성안에 사는 사람들(귀족)로 나누어 보여 주고 이어서 전쟁이나 대외 교류 등을 다룬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12권은 북한의 모습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따뜻한 배려가 돋보인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유물이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는 무생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함께 나란히 있어야 한다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일깨워 주는 이 책과 함께 이번 겨울 독서 삼매경에 빠져 보자.
오복섭 성남시 낙생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