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문인, 기업가로 성공하며 아들 앤더슨 쿠퍼 씨를 성공한 언론인으로 키워낸 글로리아 밴더빌트 씨의 1980년대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최근 재벌가 출신의 앤더슨 쿠퍼 기자가 미국 CNN 뉴스 메인 앵커 자리에 오르면서 쿠퍼 기자의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81) 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락한 삶을 뿌리치고 이라크 등 전쟁터를 누빈 쿠퍼 기자와 마찬가지로, 밴더빌트 씨도 재벌가 상속녀로서의 안온한 삶을 거부하고 ‘불꽃같은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기 때문.
1924년 철도왕 윌리엄 밴더빌트 씨의 딸로 태어난 밴더빌트 씨는 두 살 때 부친이 사망한 뒤 400만 달러의 유산을 상속받으면서 ‘샴페인으로 발을 씻고 영국 왕가와 교유하는’ 유복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넘치는 예술적 ‘끼’는 평범한 갑부의 삶을 거부했다.
그가 미술을 공부한 뒤 유화와 파스텔화 등으로 첫 개인전을 열자 사람들은 ‘호사 취미’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홀마크사는 그의 천부적 감각에 매혹돼 1968년부터 ‘밴더빌트 디자인’을 사들여 팬시상품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디자인한 옷감도 대형 직물업체 블룸크래프트사를 통해 상품화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55세 때인 1979년에는 의류업체 무르자니와 공동으로 ‘글로리아 밴더빌트 디자이너 진’을 설립해 직접 디자인한 진을 선보이며 큰 성공을 거뒀다.
문인으로서의 경력도 디자이너 활동 못지않게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55년 첫 시집 ‘연시집(Love Poems)’을 내놓으면서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옛날에 한 아이가 살았습니다/아이는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라는 내용의 ‘동화(Fairy Tale)’와 ‘사랑은 서서히 오는 것’ 등의 시는 고금의 문호들이 남긴 시 못지않게 큰 인기를 끌었다. ‘엄마 이야기’ ‘옛날에-진짜 이야기’ 등 에세이집도 내놓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됐다.
앤더슨 쿠퍼
그의 남성 편력도 미국인들의 큰 화젯거리였다. 두 번째 남편인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세 번째 남편인 영화감독 시드니 러멧, 네 번째 남편인 작가 와이엇 쿠퍼 씨 등이 모두 당대의 이름난 재사(才士)들이었다. 배우 말런 브랜도,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 영화 ‘에비에이터’의 주인공인 억만장자 하워드 휴스 씨 등과도 염문을 뿌렸다. 밴더빌트 씨는 7월 회고록 ‘낭만의 추억(Romance Memoir)’을 출간하면서 CBS 뉴스에 출연해 지금까지의 남성 편력을 털어놓기도 했다.
CNN은 3일 보스니아 르완다 소말리아 등을 누벼온 38세의 쿠퍼 기자를 메인 앵커로 발탁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2001년부터 CNN에서 일해 왔으며 이라크 등 전쟁터,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내습 현장 취재로 일약 스타 기자가 됐다.
성격은 다르지만 어머니 못지않게 치열한 삶을 살아온 쿠퍼 기자는 어머니가 타계할 때 어떤 말로 소식을 전할까. “어머니는 말하셨죠. 인생을 느껴라”라고 하지는 않을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