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설립하려면 두 가지 규정 중 하나를 따라야 한다. 국내 대학이면 ‘대학설립·운영규정’을, 외국 대학이면 정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외국교육기관 특별법 시행령’을 각각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두 개의 법령이 ‘대학 설립’이라는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국내 대학 설립 때는 매우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는 반면 외국 대학 설립 때에는 그렇지 않아 형평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외국 대학을 유치해 교육발전과 경제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령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가장 중요한 항목이 ‘설립 기준’인데 국내 대학에 적용되는 규정은 교사(校舍)와 교지(校地)에 대한 기준면적을 무척 상세하게 제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절대로 대학을 설립할 수 없게 돼 있다. 반면 외국 대학은 ‘교육상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기준을 완화하여 승인할 수 있다’, ‘교지와 교사도 임차가 가능하고, 수익용 재산도 보험 가입으로 가능하다’고 돼 있다. 이 시행령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극단적인 경우 외국 대학은 자신들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남의 땅, 남의 건물을 빌려가며 마음껏 ‘교육장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어째서 이런 파격적인 규정을 외국 대학 설립에만 적용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 정부가 법을 앞세워 국내 대학을 도태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학의 운영에 적용되는 ‘억지규제’도 과감히 풀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학교법인시설과 학생교육의 관계인데 현행 규정은 법인시설을 학생교육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지방 대학들이 무분별하게 서울캠퍼스를 운영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다. 제도가 늘 뒤에서 발목만 붙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보고서는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교육시장 개방과 동시에 대학규제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교육당국은 이 충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 교육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