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이 뉴라이트닷컴(www.new-right.com)에 기고한 글 전문.
▽안병직 선생님을 위한 변명 ▽
며칠동안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내였습니다. 산사람이 히말라야에 들고 난 이후의 감흥이거나 열반을 경험한 구도자의 며칠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대의 거인을 만난 까닭이었습니다. 안병직! 그이에게는 학문적 엄정함과 민중에 대한 사랑이 ‘일흔’을 바라보시는 연륜과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저같은 작은 사람도 이렇듯 뭇매를 맞는데 선생님은 어쩌시려는지’ 하는 걱정에 ‘박정희 때도 할 이야기 다 하고 살았는데 뭘..’하시며 오히려 걱정을 돌리십니다. 현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당신의 제자들 때문에 가슴에만 담아둔 이야기를 이제는 나라를 위해 꺼내야겠다고 하실 때에는 저의 입장에서 동병상련의 아픔같은 것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역시 튈만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정제되지 않은 글을 배설하는 진중권 선생이 또 끼어 들었습니다. 안병직선생님만 아니면 ‘그저 그러려니’하고 피했을 터인데 오늘은 저도 진교수의 배설물을 헤집어 볼 생각입니다.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얼마 전 리영희선생님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안병직선생님이 80년대 혁명이론의 주춧돌을 놓으셨다면 리영희선생은 대중적인 토양을 닦은 분이라고 감히 평가합니다. 그만큼 두 분은 80년대,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으로서의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 결정적인 분들이셨습니다.
리영희선생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중국, 중국인민, 문화대혁명은 잘못임이 드러났습니다. 그 누구도 아니고 중국 공산당에 의해서 그것은 부정되었고, 중국인민에 의해서 잘못임이 확증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리선생님은 마오와 마오주의는 잘못한 게 없고, 홍위병이 마오의 뜻을 왜곡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전두환은 잘못이 없고,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이 문제라는 논리를 리영희선생님이 쓰고 있습니다. 이미 리영희선생님은 지식인이 넘어서는 안되는 강을 건넜습니다.
제한된 시기에 제한된 정보로 한계적 판단을 하는 것이야 모든 인간과 지식인의 숙명이니, 오판 자체를 힐난하는 것은 야박한 일입니다. 다만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오판을 객관적 사실앞에서 언제나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각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자신이 성찰한 결과를 내놓아야 합니다. 그건 일종의 사명이기도 하거니와 지식인의 고독하고 돌이킬 수 없는 책임입니다.
유신과 5공의 칼날아래서, 심하면 반대자들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체제하에서 ‘우상과 이성’을 말하고, ‘식민지반봉건’을 주장했던 이들, 우리는 이들에게서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인의 사명을 읽어냈고, 그이들을 따랐습니다. 그건 그 내용에 대한 동의여부와는 또 다른 종류의 존경이었습니다.
진교수도 이야기했듯이 ‘식민지반봉건론’은 허상이었습니다. ‘우상과 이성’도 허상이었습니다. 진교수가 조롱하기 훨씬 이전에 안병직 선생님은 목숨을 걸고 쌓아올린 그 이론을 스스로 허물었습니다. 진교수에게 묻습니다. 한창 선생의 이론이 대학가 운동세력의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던 80년대 ‘그것은 허상’이라고 질타한 분이 지식인입니까? 아니면 지금까지도 우상과 이성 사이에서 애매한 말로 변명하는 분이 지식인입니까? 자신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후학들에게 고백하고 다시 ‘사실’과 ‘자료’ 앞에 서는 분을 ‘건달교수’라고 한다면 진교수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불려져야 합니까? 내용의 동의 여부를 떠나 자신의 사고를 공개적으로 성찰하는 한 노교수의 노력이 칭송받지는 못할지언정, 당신이 천박한 당구장 용어로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럴 수는 진정..없는 노릇입니다.
진교수의 놀라운 지적 천박성
현 정부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이념적 본질로 하고 실용주의를 결합하고 있어, 이것이 선진화에 무능하고,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 안병직 선생님의 주장에 대해 진교수는 되지도 않은 말로 헐뜯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시장경제를 하고, 국제무역을 한다고 해서 그들의 이념을 자유주의라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유럽 사민당이나 노동당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한다고 해서 그들의 이념을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이며, 실제적으로 중화주의와 실용주의을 결합하여 중국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 정권이 국제무역을 수용하고, 시장질서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즉 김정일처럼 폐쇄국가를 구축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 정권의 이념을 자유주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현 정부와 집권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공연하게 부정합니다. 강남과 서울대, 재벌에 대한 태도에서 거의 계급적 적대의식에 가까운 혐오를 발견합니다. 투자자를 혐오하는 사회여론을 만들어 놓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노려보는 모습에서 건달정부의 특색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이 대한민국을 이상한 나라라고 합니다. 국가가 안전을 유지하고 발전하려면 주변국, 특히 강대국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합니다. 민족주의가 그들의 집권이데올로기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급기야 좌익이든, 우익이든 전 세계 모든 양심세력과 국가들이 김정일의 인권탄압을 하나같이 규탄하고 그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현 정부의 이념을 수구좌파주의라고 하지 않으면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빨치산 출신이나 남파간첩들까지 북에 보내 주면서 50년 세월 억류된 국군포로와 납치된 아버지의 생사 확인도 해주지 않는 이 정부의 이념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일을 붕괴시켜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진중권교수는 이야기합니다. 묻습니다. 전두환체제를 무너뜨려서 뭘 어쩌자는 거였습니까? 일본 군국주의체제를 타도해서 뭘 어쩌자는 거였습니까? 그 뒤의 혼란을 어떻게 할 작정이었습니까? 김정일씨가 인민들이 먹고 사는 길을 막지 않고, 최소한 사람대접을 해주면, 그럴 가능성이 있으면 왜 붕괴시키자고 하겠습니까? 수백만이 죽어간 한국전쟁이 끝나야 하듯이 수 백만을 죽이고, 수 천만을 고통속에 몰아넣은 야만의 체제는 끝나야 합니다. 식량을 구하러 길 떠난 사람에게 반역자라는 감투를 씌워 동물 이하의 취급을 한 체제는 김정일체제 이외에는 존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운운하며 김정일을 변호하기 위해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한 진교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2차대전을 일으키기 직전 베를린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그나마 베를린올림픽은 성공적이었던데 반해 금강산관광은 정몽헌의 죽음위에서 위태롭게 서있고, 개성공단은 국민세금을 담보로 버티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작 이런 것을 근거로 그렇게 용감한 주장을 하다니, 당신의 무모가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안병직선생님은 차마 금강산에 안 가셨다 합니다. 두만강, 압록강에도 아직 안 가셨다 합니다. 아니, 못 가셨다 합니다. 죽어간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비명소리를 차마 어쩌지 못하셔서 갈 수가 없으셨다 합니다. 이런 분의 충정을 저속한 용어로 나불거리는 진교수...당신이 나의 눈에는 김정일과 동류로 보입니다. 아니, 그에게 넋을 팔아버린 가여운 앞잡이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리자는 이야기를, 그러자면 수령독재체제를 붕괴시켜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북한민중들에게도 천부인권이 있다는 이야기를, 그들 스스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고 훗날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그런 이야기들을 고작 수구냉전의 회귀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진중권 교수의 지적 수준에 대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진중권이 부럽다
진교수의 장점은 ‘막말’과 ‘내용없음’입니다. 신자유주의나 세계화가 무슨 재앙의 원인인 것처럼 잔뜩 겁주어 놓고, 아무런 대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일처럼 하자는 이야기인가?’ 물으면 ‘내가 언제 그랬나?’하고 펄쩍 뛰겠지요. 참 좋겠습니다. 훗날 성찰하고 회고할 내용이 전혀 없으니 말입니다. 교수평가제가 있기는 있나 싶습니다.
천년 노송이나 은행나무에는 상처가 있습니다. 그 상처들이 있었기에 아마 천년을 살아낸 것이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그 상처들을 밀어내지 않고 쓰다듬었기 때문에 천년의 나이테를 허리에 두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천년노목에 숙연함을 드리는 이유는 천년에 있지 않고, 천년 세월의 풍파를 껴안음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진중권교수의 내용없는 막말까지 껴안으셔야 되는 안병직선생님이 새삼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