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첫 선을 보일 롯데호텔서울 프랑스 식당 쉔브룬의 새 메뉴. 왼쪽부터 ①새우 밀가루튀김, 훈제연어, 거위간 테린(묵의 일종) ②야채 타르트 ③해산물(가리비 홍합 석화) 요리 ④가재향 거품을 곁들인 호박 수프 ⑤단호박을 곁들인 광어구이(메인) ⑥양갈비구이와 올리브(메인) ⑦치즈 ⑧커피크림브릴레, 초콜릿 셔벗, 초콜릿케이크 ⑨초콜릿, 젤리, 쿠키 ⑩커피 사진 제공 롯데호텔
《한국에서 프랑스 식당은 인기가 없다. 쿠켄네트(www.cookand.net)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이탈리아 식당의 수(129개)는 프랑스 식당(20개)의 6배가 넘는다. 한국인이 프랑스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조리법이 복잡해 손이 많이 가고, 코스가 길어 먹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 정통 프랑스 식당보다 가벼운 요리 위주의 비스트로가 각광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데 최근 특급 호텔을 중심으로 프랑스 음식의 ‘정통성’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요리가 10가지 이상 나오는 긴 코스 메뉴를 내놓는 것이 특징. 그만큼 다양한 미각을 체험할 수 있다.》
○미식가들의 단골 레스토랑
신라호텔 프랑스 식당 ‘콘티넨탈’은 7월부터 10코스짜리 ‘르 델리스’ 메뉴를 내고 있다. 애피타이저 4개, 메인 2개, 디저트 2개와 셔벗, 차로 구성돼 있으며 한달에 한번씩 바뀐다. 가짓수는 많지만 가격은 9만8000원으로 다른 정통 코스보다 저렴하다.
콘티넨탈의 김용수(39) 주방장은 “배를 채우기보다 식사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이 메뉴를 찾는다”고 전했다. 도올 김용옥(58) 순천대 석좌교수는 우연히 이 식당을 찾았다가 이 메뉴를 맛보고 난 뒤 매달 메뉴가 바뀔 때마다 꼭 찾아온다.
메인요리인 양갈비 구이와 올리버.
롯데호텔은 21일 재개장을 앞둔 프랑스 식당 ‘쉔브룬’의 콘셉트를 ‘백 투 더 클래식(Back to the Classic)’으로 잡았다. 이를 위해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라 투르 다르정’과 ‘레 잠바사되르’ 수석 요리사를 지낸 실뱅 듀브로(34) 씨를 영입했다. 이곳은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퓨전을 도입한 현대적 프랑스 요리)의 유행 속에서도 정통 코스를 고집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쉔브룬은 점심 3코스, 저녁 5코스였던 기존의 코스 메뉴를 각각 7코스, 10코스로 늘려 잡을 계획. 코스당 음식의 양을 줄이는 대신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메뉴는 2주일에 한 번씩 바꾼다. 저녁 메뉴 기준 12만 원 정도로 예상된다.
하루 1, 2팀의 손님만 받는 ‘미식가 식당’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라미띠에’는 매일 재료 사정에 따라 메뉴를 바꾼다. 코스는 평균 8, 9가지, 고객에 따라서는 10, 11가지로 늘어난다. 1인당 15만 원이지만 고객 가운데 단골 비율이 90%일 정도로 ‘마니아’가 많다. 메뉴가 많고 자주 바뀌는 것도 단골 비율이 높은 덕분.
메뉴가 긴 데다 와인을 곁들이면 식사를 4시간이나 할 때도 있어 영업 종료 시간이 따로 없다. 오너 셰프인 서승호(39) 사장은 “접시에 담는 요리의 양이 줄면 먹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음식을 조리 직후 적정 온도에서 가장 맛있는 상태로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스페인 ‘엘 불리’코스는 30가지 넘어
해외에서도 유명하고 고급스러운 식당은 메뉴가 많다. 세계 미식가들이 가장 가 보고 싶어하는 레스토랑으로 꼽는 스페인 엘 불리(El Bulli)의 코스는 30가지가 넘는다. 모든 접시에 나오는 요리는 한입에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거품으로 만든 소스, 국수 한 줄로 만든 스파게티, 2년 넘게 말린 토끼 귀 요리 등 하나하나가 손님을 놀라게 한다. 1년 가운데 6개월은 새 요리를 연구하고, 나머지 6개월만 영업을 하는 이 식당의 오너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 씨는 200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선정됐다.
영국 음식 전문지 ‘레스토랑’이 선정한 세계 최고 레스토랑 조사에서 매년 엘 불리와 함께 1, 2위를 다투는 미국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 2005년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냈던 영국 팻덕(Fat Duck)의 코스 메뉴도 10코스를 훌쩍 넘긴다.
뉴욕에 있는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지유정(33) 씨는 “뉴요커들이 찾는 프랑스 식당은 퓨전화 추세가 강하지만 상류층이 가는 최고급 레스토랑은 정통성이 강하고 메뉴도 복잡하다”고 전했다.
배화여대 조리학과 염진철(45·서양요리전공) 교수는 “고급식당을 찾는 고객일수록 음식에서 맛 이외의 색다른 만족을 원한다”며 “정통 요리나 많은 메뉴를 내는 것은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차별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