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다시 찾은 10월 말의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온 시가가 노랑 낙엽으로 물결치는 황금빛이었다. 시민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던 ‘소련문화궁전’만이 홀로 군림하던 과거 바르샤바의 스카이라인은 이제 고층 건물의 숲을 이뤄 ‘폴란드의 기적’이란 풍문을 실감하게 한다.
20세기 말 동유럽 소비에트제국의 총체적 붕괴로 냉전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 대역사의 출발지 폴란드. 공산권군사동맹 ‘바르샤바조약기구’를 결성했던 장소에서 그 기구를 해체하는 물꼬를 튼 폴란드.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은 바로 이 폴란드에서 번진 노동자의 파업 시위가 발단이 됐다.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 지식인의 연대세력, 그리고 이를 진압하려는 당국 사이의 기나긴 대립이 계속되는 동안 민주화 시위는 처음에는 서서히, 그러나 뒤에 가서는 격렬한 속도로 동유럽 전역에 확산되었다. 폴란드에서 10년이 걸린 민주화가 헝가리에서는 10개월, 동독에서는 10주일, 그리고 체코에서는 10일 만에 성취되는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끝내 ‘철의 장막’은 철거되고 베를린의 장벽이 헐렸으며 독일은 통일되고 유럽은 하나의 세계가 되면서 새로운 세기를 맞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 200주년을 맞은 1989년에 이뤄진 구소련의 평화적 해체와 동유럽의 민주화는 1789년의 대혁명에나 비길 ‘진정한 혁명’이며, 그에 비해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은 레닌의 쿠데타에 불과했다고 말한 것은 영국의 사학자 마이클 하워드였다.
세기말을 장식한 그 세계사적 사건의 진원지가 폴란드 북쪽의 항구도시 그단스크. 공산체제 아래서 처음 조직된 반체제 자유노조연합 ‘솔리다르노시치’(영어의Solidarity로 연대라는 뜻)가 1980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바로 사반세기 전의 일이다.
폴란드 현대사의 주역인 노조지도자 레흐 바웬사,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훗날 폴란드 대통령) 등을 현지에서 만나 소비에트체제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 새로운 세기 개막의 의미 등에 대해 들어봤다.
바르샤바=최정호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