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오가는 도박 얘기가 아니다. 그저 놀이 삼아 하는 카드 게임 등에서도 승부사 기질을 가진 사람은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선동렬 삼성 감독이 한국야구위원회 홍보위원 시절 때다. 그는 사소한 게임에서도 탁월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선 감독은 상대편이 기분 좋게 게임에 참가할 수 있도록 승부를 조절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산더미만한 덩치를 흔들어대며 엄살을 떨면서도 결국 끝판에 가보면 거의 승리는 선 감독 차지였다.
올 시즌 선 감독이 초보 사령탑으로선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4연승으로 몰아붙이며 우승한 것은 그동안 숱한 승부 세계에서 쌓은 경험과 여유가 큰 도움이 됐을 게 분명하다.
올해 한국시리즈는 예언 시리즈란 말이 나올 정도로 선 감독의 예상과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선 감독은 유종의 미는 거두지 못했다. 한중일 대만의 챔피언이 맞붙은 아시아시리즈에선 일본에 예선에선 지고, 결승에선 이기겠다는 예언은 빗나갔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선 감독이 가진 삼성이란 ‘패’는 일본 롯데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승부사가 ‘패’를 탓하랴. 가진 전력을 극대화해서 필승을 거두는 게 승부사이거늘.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절대 약세의 평가에도 완투 선동렬, 번트 김재박, 홈런 한대화란 비장의 카드를 잇달아 꺼내들며 일본을 무너뜨리지 않았나.
이번 패배를 계기로 내년 시즌 승부사로서 더욱 진화할 선 감독의 모습이 벌써부터 아른거린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