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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이야기 동양신화

입력 | 2005-11-15 03:17:00


젊은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을 추천해야 할 경우 우선적으로 신화서를 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만이 경험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신화는 누구나 흔히 생각하듯 아득한 옛날의 어느 시점에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의 저자는 어느 특정한 개인이 아니다. 신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익명의 무수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신화를 읽으면서 바로 그러한 인간의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상상력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신화를 읽으면서 인류가 인류의 이름으로 발휘할 수 있었던 상상력의 온갖 유형들을 함께 꿈꾸고 그리게 된다. 게다가 엘리아데나 뒤랑 같은 이의 견해를 빌린다면 인간은 지금도 꾸준히 신화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조금 유식하게 말한다면 신화는 인간과 함께 영속한다. 꿈이 사라진 현대 디지털 문명사회에서 인간은 신화를 읽으면서 다시 인간의 꿈꿀 권리를 되찾는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라는 이야기를 우리가 자연스럽게 ‘젊은이여 신화를 읽어라’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참으로 아쉬운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신화를 읽으라고 권하면서 결국은 그리스 로마 신화밖에는 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 동양 신화’를 쓴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는 “‘상상력의 편식’에 의해 ‘상상력의 맥도널드 제국’이 출현할 날이 머지않을 것”이라고 좀 과장되게 걱정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버금가는 동양의 신화를 아이들에게 권하고 읽혀줄 수 없는가’라는 자괴감을 우리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의 발간은 우리의 그러한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준 쾌거라 할 만하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중국 신화를 서술하면서 그 의미를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교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 덕분에 우리는 동양 신화와 서양 신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상상력을 접하고 상상력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차이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정 교수는 중국 신화를 반드시 한국의 신화와 비교하고 후대의 한국 및 중국 문화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언급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화란 그 형태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영속한다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깨달을 수 있게 되며 신화가 모든 문화의 뿌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장점은 그 무엇보다 읽는 재미에 있다. 내가 보기에 정 교수의 문장력은 당대 지식인 최고수 중 한 사람에 속한다. 그는 난해하고 어려운 부분을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 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지식이 해박하고 깊이가 있어서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감히 꿈꾸어 본다. ‘이야기 동양 신화’가 우리 젊은이들의 고전 필독서가 되어 제우스, 프로메테우스, 크로노스, 우라노스 등 그리스 신화의 신들 이름 대신 동양 신화의 신들 이름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입에서 나오고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동양 문화의 뿌리를 체화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형준 한국문학번역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