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작 ‘오늘도’ (2003년)
물방울 무늬 팬츠를 입은 한 사내가 대형 거울 앞에 서 있다. 집인지 공중목욕탕인지 잘 모르겠다. 근육이라고는 없는 가냘프고 피곤한 육신…. 그런데 이 사내의 두 손은 무엇엔가 한창 열중해 있는 중이다. 오른손은 머리 위를 돌아서 왼쪽 눈 위를, 왼손은 눈 아래를 한껏 잡아당기고 있다. 작품 제목은 ‘티’다.
조각가 이원석(38) 씨가 만든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사는 게 하나도 재미있을 것 없는 한 평범한 사내가 거울 앞에서 자신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마침내 눈의 티를 발견하고 혼신의 힘을 쏟는 표정이 잘 담겨 있다. 한낱 눈의 티 하나를 발견하고 거기에 몰입하는 사내 얼굴이 너무 진지해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 문득 쓸쓸해진다. 지루하고 비루한 일상 속의 나 자신이 사내 모습에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늦은 나이에 첫 개인전을 갖는 이 씨의 작품들은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과 ‘일상’이라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만원 지하철 속에서 서로 엉켜 있는 사람들을 표현한 ‘오늘도’나, 목욕탕에서 축 늘어진 살집의 중년 남자가 허리를 수그리며 운동을 하고 있는 ‘비대한 숨’ 같은 모습들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실물인지 조각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말끔히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머리를 벽에 부딪고 있는 ‘내 탓이오’에서도 도시의 샐러리맨들이 매일 겪는 좌절과 절망이 사실적으로 엿보인다.
미술평론가 이태호 씨는 “그의 작품에는 놀랍도록 예리한 관찰에 의한 유머와 풍자가 있다. 웃음이 나지만, 그 뒷맛은 씁쓸하거나 허망하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와 무게를 생각한다”고 평했다. 16∼22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02-736-1020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